거짓말 없는 과정의 힘

2024-09-30

그야말로 열풍이다. 넷플릭스의 새 시리즈 ‘흑백요리사’는 공개되자마자 한국 내 1위를 넘어 비영어권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유튜브에서는 출연자들의 후기 영상이 인기 동영상 순위에 오르고, 각종 콘텐트가 프로그램의 장면을 패러디하며,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방송의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이만하면 대박이 났다고 표현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왜일까. ‘올리브 티비’가 ‘마스터 셰프 코리아’와 ‘올리브 쇼’ 등으로 주가를 올리던 시절은 10여 년 전이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요리는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요리 서바이벌’이라서 인기 있는 게 아니다. ‘요리 무협지’라서 인기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해온 무림의 고수, 백수저가 있다. 그들은 숙련된 솜씨와 경험으로 천하를 호령하고 있다. 반대로 이들에게 맞서는 패기로운 젊은 도전자, 흑수저가 있다. 이들도 못지않게 혹독한 수련을 거쳤다. 그들은 정정당당하게 맞붙어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무협의 연출이 가능한 이유는 요리가 거짓말이 불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꼼수나 거짓말 없이 과정을 착실히 밟아야만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수저로 참가한 최강록은 본인의 에세이 『최강록의 요리 노트』(2023)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는 맛에는 ‘신의 한 수’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이 엉망인데 어느 한 가지 비법으로 맛있는 요리가 될 리 없겠지요. 요리는 ‘천재처럼’ 하는 게 아니라 ‘개미처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개미처럼 성실히 수련해온 땀방울이 꽃을 피워내는 모습, 상대방이 쌓아온 성실함을 인정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을 보는 큰 재미다. 그리고 그 재미는, 운이며 연줄 같은 것이 치덕치덕 붙은 현실에서는 참으로 느끼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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