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쑨원의 '삼민주의'에 끌린 이유 [왕겅우 회고록 (33)]

2026-01-02

외국어문학과 교수들 밑에서 공부할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려 왔다. 셰익스피어 전문가, 유럽 고전학-중국학 전문가, 낭만주의 전문가, 소설 전문가, 그리고 어학과 번역학 전문가가 있었다. 1학년을 가르친 분이 별로 없어서 대개 평판으로만 아는 분들이었다. 2학년에 올라가 소설, 번역학과 낭만주의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학교가 문을 닫았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인문대 학장인 러우광라이(樓光来) 교수도 강의를 시작했지만 리튼 스트레이치의 〈빅토리아시대의 명인들〉만 다뤘다. 강의가 너무 짧아서 그 책을 중시하신 까닭은 알아내지 못했다. 스트레이치의 스타일과 역사의식이 내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에는 이포의 중학 시절에 배운 대영제국의 역사를 보정해 주는 점이 있었다.

유럽 고전학-중국학 전문가인 판춘중(范存忠) 교수가 학과장이었다. 뵌 적이 없고 훌륭한 교사라는 소문만 들었다. 오랜 후 1973년 난징에 갔을 때 그분을 만났다. 다른 정권 아래 내가 학생이던 시절 이야기를 하자 영문학 학우였던 내 아버지를 기억하신다고 했다. 판 선생은 장학금으로 미국에 가서 어빙 배비트 교수 아래 공부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의 영문학자로 명성을 누렸다. 아버지는 그 전해에 돌아가셨다. 살아계셨다면 내가 판 선생 만난 것을 기뻐하며 옛 학우와 다시 연락을 취하고 싶어 하셨을 텐데.

학생들이 모두 좋아했던 또 한 분 영문학 교수는 류스무(劉世沐) 선생으로 낭만주의 시인 전문가였다. 젊은 우리들은 유명한 작품들을 알고 있었다. 열성적인 류 교수는 낭만주의 시인들이 우리 관심을 많이 끌 것을 알고 있었다. 워즈워스와 콜러리지에 관해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해주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은 키츠의 생애와 그 작품에 인용된 고전 문헌의 설명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 고전을 소개해 주고, 당송시대 시 작품에 활용된 고전적 이미지와 비교해 주기도 했다.

류 교수는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내가 여우서우 교수의 강의와의 연결점을 찾도록 이끌어준 셈이다. 여우 교수는 반대 방향의 길을 통해 후세 중국 시 작품에 영향을 끼친 고전문헌을 가르쳐주었다. 그 당시에도 1학년 한 해 동안 얻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기던 것이었다. 이제 돌아보면 두 분 선생님은 내 훗날의 연구 활동에 당시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가르침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분들이 뜻한 것처럼 문학 감상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된 것이지만.

역사학자의 길을 택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싱가포르의 대학 시절이 다 끝나갈 무렵에 내린 결정이었음을 밝힌다. 학교 시절 그 과목을 싫어한 데는 대영제국의 역사뿐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교과서만 읽어주는 선생님이 따분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중앙대학의 문과 1학년 필수과목 중국통사도 재미없었다. 담당 먀오펑린(缪鳳林) 교수는 사학과 과장으로 교양 담당 교수 중 유일한 원로 교수여서 학생들이 고맙게 여겼다. 널리 쓰이는 대학교재 〈중국통사요략(中国通史要略)〉으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 다룬 책이었다. 1학년 때 내가 돈 주고 산 두 권 교재 중 하나였다.

급우들은 먀오 교수가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당시 부각되고 있던 수정주의 역사관을 그분이 너무 무시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정주의 학파에는 후스(胡適)의 제자로 영향력이 큰 저서 〈고사변(古史辨)〉을 낸 구제강(顧颉剛)과 그 동료들이 있었다. 먀오 교수는 그들이 서양 물을 너무 먹었다고 여겼다. 일본과 소련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궈모뤄(郭沫若)나 뤼천위(吕振羽)에 대한 경멸은 더 심했다. 먀오 교수가 비판한 문헌들은 내가 읽어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중국사를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중앙대학 역사학자들에게 비난받은 연구성과들을 내가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십 년 이상 뒤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 비판의 열성이 내게는 재미있었고, 먀오 교수가 말한 내용 때문에 그분의 책 내용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그 책은 읽기 어려웠고 열심히 비판한 “근대주의”에 관해 알려주는 것이 아주 적었다. 대학 시절 선배였던 그분을 알던 아버지는 그 책을 “견뎌내라”고 하셨다. 먀오 교수와 아버지를 가르친 류이정(柳詒徵) 선생의 세 권짜리 〈중국문화사〉에 나는 더 끌렸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으나 상고시대부터 19세기까지 문화의 발전을 폭넓게 살펴보며 중국문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제공해주는 책이었다. 내 중국사 이해에 당시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친 책이었는데, 중국사 정규 강의에서는 큰 자극을 얻지 못한 사실을 고백한다.

그러나 먀오 교수의 강의가 삼민주의 과목의 이해에는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이 되었다. 쑨원의 삼민주의는 국민당 민족주의의 청사진이었고 난징 정부의 성경과 같은 존재였다. 그 시절에는 서양의 제국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양쪽에 대한 중국의 대응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먀오 교수는 굳건한 왕조 중심의 정치사로 중국사의 윤곽을 잡아주고 쑨원 〈삼민주의〉의 앞쪽 왕조시대를 지나 민국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에 관한 강연들을 해설해주었다.

삼민주의의 3대 강령, 민족, 민권, 민생 이야기는 이포에서 소학교 시절부터 들은 것이었으나 그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민지시대 말라야의 복합사회에서 일본 침략에 대항하는 중국인사회의 애국심은 용납되었지만 영국인에 대항하는 정치활동은 금지되었다. 따라서 쑨원의 사진을 내걸고 중화민국 국기를 휘날릴 수는 있어도 삼민주의 중 민족주의의 표명에는 조심이 필요했다. 삼민주의 지지로 시작하는 중화민국 국가 제창이 허용되는 행사도 있었다. 내가 아는 이포의 중국인 청년들은 모두 삼민주의를 알고 있었지만 쑨원의 강연을 가르치는 일은 없었다. 삼민주의 책자가 말라야에서 유통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중앙대학 들어가기 전에 그 책을 본 일이 없고, 부모님도 읽으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삼민주의 강의 시작 때 책을 사라고 권해서 내가 돈 주고 산 두 번째 교재가 되었다. 다른 책은 내가 좋아서 산 것들이었다. 그러나 너무 힘들어 다 읽지도 못한 〈중국통사요략〉과 달리 〈삼민주의〉에서는 담당교수가 권한 모든 강연을 읽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제국주의자들의 소행에 대한 쑨원의 신랄한 비판에 끌렸던 것 같다. 나는 대영제국에 대한 정치적 반감이 없었고, 교재에 나오는 세계 각지에서 영국의 소행에 대해서도 관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쑨원이 중시하는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대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인민과 국가들에 일으킨 문제들은 알고 있었고, 영국의 역할에 대한 중국 민족주의의 관점은 내가 알던 것과 크게 달라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말라야에서 국민당 활동이 금지되고 그곳 중국인 학교에서 삼민주의를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급우 중에는 그 책 읽기를 거부한 사람이 많았다. 국민당 정권을 비판하면서 그 책을 단순한 선전물로 여긴 것이다. 담당교수의 자세에서 분명히 주입식 세뇌의 냄새가 났고 그나마 본인의 신념도 보이지 않았다. 형식적인 연말 고사에는 전원을 합격시켰다. 그런데도 내게 재미있었던 것은, 정치적 토론을 많이 듣고 자라며 어느 편을 들거나 냉소 또는 무관심에 빠지기 쉬운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내가 중국 정치에 관해 순진한 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쑨원의 사상이 내게는 새롭게 들리고 그 1년 동안 배운 어느 것보다 큰 영향을 내게 끼쳤을 것이다.

좋아한 과목은 아니었다. 중국어와 영어로 된 수많은 작품을 소개받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나중에 생각하니 말라야에서 받은 교육에 정치적 내용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의 주장이 강력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쑨원의 글을 무비판적으로 읽었고, 오랜 후에야 그 주장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통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은 까닭을 이해할 만한 공부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쑨원의 주장이 말라야의 중국인들에게 많이 통한 한 가지 이유는 그 자신의 화교 배경에 있었다. 그는 하와이와 홍콩에서 영어로 공부했고 싱가포르와 페낭에서 많이 활동했다. 혁명을 제창한 연설 때문에 페낭에서 영국인들에게 추방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삼민주의를 읽어본 사람이나 그 내용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중국인의 자신감 회복을 위한 발판으로서 민족주의를 논한 앞쪽의 여섯 강연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Wang Gungwoo, 〈Home is Not Here〉(2018)에서 김기협 뽑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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