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배우다>.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70년대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인도 북부 라다크를 방문했다가 자연과 하나가 돼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을 보고 그들의 삶을 통해 현대사회를 돌아보며 쓴 책이다. 이 책이 나온 뒤 ‘오래된 미래’는 무한생산과 무한소비를 통해 인류, 나아가 지구를 파멸로 몰고 가고 있는 현대문명을 넘어서 미래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오래된 ‘자연친화적’ 삶의 전통을 의미하는 상징어가 됐다.
나는 미국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 동쪽으로 10시간을 달려갔다. 그곳은 ‘미국 역사의 출발점’인 보스턴으로부터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못’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월든 연못이다. 소로가 이곳 통나무집에서 살며 인간들이 탐욕에 빠져 자원을 낭비하지 말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라고 경고한 지 18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지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심각한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생각하면 월든 연못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미국의 오래된 미래, 아니 우리 모두의 오래된 미래다.
소로, 생태주의자지만 문명과 균형 추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뒤편으로 소로로 보이는 조각이 눈에 띄었다. 그의 전신 조각 뒤로 작은 통나무집이 나를 맞았다. 실제 소로가 살았던 통나무집은 사라졌고, 재현한 것이다. 책에서 읽었듯이 정말 좁고 최소한의 물품만 있는, 너무도 검소한 통나무집이다. 이를 보고 있자 책을 통해 배운 그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소로는 19세기 초 월든 연못이 있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연필공장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최고 명문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다. 하버드대학은 양가죽으로 만든 석사 졸업장을 비싼 값에 팔았는데, 그는 “양가죽은 양 몸에 붙어 있는 것이 낫다”라며 수령을 거부했다. 당시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은 교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어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었다. 다만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가정교사도 하고, 가업인 연필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나는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삶의 핵심적 사실들만 마주치고 싶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가 후에 그의 대표작 <월든: 숲속의 생활>에서 밝혔듯이, 28세인 1845년 그는 ‘보다 본질적으로 살기 위해’ 동네 선배가 소유한 월든 연못 근처 통나무집에 배낭 하나를 메고 들어갔다. 얼마 되지 않아 충격적인 사건이 생겨났다. 세무서가 밀린 6년 치 인두세(각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매기는 세금)를 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에 못 내겠다고 버티다가 투옥됐다. 다행히 그의 이모가 세금을 대신 내주는 바람에 다음 날 석방됐다. 이 사건은 그의 무정부주의와 시민 불복종 운동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는 책 <시민 불복종>을 통해 “법은 결코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없”으며 “불복종은 자유의 진정한 기초다. 복종하는 자는 노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상의 정부는 시민들이 정부를 상기하지 않아도 되는 정부”라는 주장이 보여주듯이 그는 무정부주의자, 특히 자연을 중시하는 일종의 ‘생태 무정부주의자’였다.
소로는 폭 3m, 길이 4.5m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최소한의 의식주와 연료만 사용하는 검소한 생활로 2년 2개월 이틀을 살았다.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인 연계를 추구하는 ‘초월주의’에 공감한 그는 인간중심주의와 탐욕을 벗어나 환경적 책임감을 가지고, 필요한 최소한만 소비하는 검소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천했다. 그는 건강한 경제는 건강한 생태계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치품과 소위 편의품은 불필요할 것일 뿐 아니라 인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들이다”, “집에서도 여행자처럼 살아라”, “사람이든, 무스(말코손바닥사슴)든, 소나무든, 모든 생명은 죽은 것보다 살아 있는 것이 낫다. 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를 파괴하기보다는 살릴 것이다”, “나는 자연을, 자연경관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진정이며 나를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의 산책은 온종일의 축복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문명을 부정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문명과 자연의 균형을 추구했다.
그에 대한 여러 자료를 전시한 관리사무소와 선물센터 등을 구경하고 자동찻길을 건너가자 월든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이라기보다는 호수라고 불러야 할 매우 큰 연못이었다. 소로 이후 연못이 커진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최소한 외관상으로는 월든 연못이 손상되지 않고 잘 지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월든 밖의 세계는 전혀 그렇지 않다.

트럼프의 반환경 정책 등 현실은 역주행
산업혁명이 본격화한 1850년대 이후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소비 등으로 지구의 평균온도는 1.6도 높아져 극지방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재앙이 본격화되고 있다. 생태학자들은 지구온난화를 1.5도 이하로 통제하지 못하면 지구는 파멸로 치달아 간다고 경고한다. 그렇게 하려면 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제로 수준으로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반환경 정책 등이 보여주듯 현실은 그 같은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소로는 폭우에도 숲속을 트래킹했다가 결핵이 재발하면서 44세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무스!”, “인디언!” 그가 마지막으로 뱉었다는 두 단어다. 무스는 북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동물이고, 인디언은 환경 파괴의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전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았던 원주민들이니,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연을 대표하는 두 단어를 읊조린 것이다.
“어디에 있지?” 그가 묻혀 있다는 슬리피 홀로 묘지를 한참을 헤맸지만, 특별히 표시해 놓은 안내판이 없어 무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구세주처럼 산책을 나온 주민을 만났다. “혹 소로 선생 묘지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물론이지요.” 아주머니는 손수 우리를 소로 무덤으로 데리고 갔다. 언덕을 넘어가자 나타난 묘지는 특별한 표식이 전혀 없고, 소로가의 가족묘지에 ‘헨리’라고 쓴 작은 묘비석이 전부였다. 친절한 주민을 만나지 않았다면, 도저히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로의 소박한 무덤 앞에 서서 추모의 묵념을 하고 있자 갑자기 가시 돋친 그의 기도가 생각났다. “인간이 하늘에 날 수 있어 땅만이 아니라 하늘까지 완전히 망치지 못하게 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로가 죽은 뒤 인간은 비행기와 우주선까지 만들어 하늘과 우주까지 망치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