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 정보까지 배달한 '배민'의 딜레마[기자수첩]

2024-10-04

'민원 제기' 업주 한밤중 찾아간 라이더

'보복 공포' 우려에도 배민, 민원인 공개

"라이더 제재 위해선 정보 제공 불가피"

콜센터업계도 "정상 업무 프로세스"

딜레마 빠진 배민... "입법 공백 원인"

판 커진 배달시장... "정부 대응 시급"

최근 황당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에 민원을 넣었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는 내용입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지난 8월 초 경기도 일산 소재 한 커피숍. 점주 A씨는 배민을 통해 접수된 단골손님의 음료 주문 내역을 확인했습니다. 이윽고 음료를 완성했고, 배민 소속 배달기사(라이더)도 매장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라이더가 보냉가방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했습니다. 한여름 단골손님에게 미지근한 음료를 전달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이더가 떠난 후 A씨는 곧바로 배민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라이더들이 보냉가방을 지참할 수 있도록 당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A씨는 이 일로 아찔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민원을 넣은 날 밤 라이더가 가게로 찾아온 것입니다. 대뜸 "컴플레인을 넣은 게 맞냐"고 따져 묻는 통에 A씨는 "보복을 당하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의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A씨가 라이더를 잘 타이른 결과입니다.

그러나 라이더의 행동이 매우 무례하다는 데는 이견을 없을 것입니다. 또 A씨가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을 라이더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범인'은 배민입니다. 민원인 정보를 배민이 알려준 것입니다.

언뜻 보면 고자질을 한 것처럼 비치지만, 민원 처리 과정을 자세히 뜯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여름철 보냉가방을 지참하도록 하는 것은 배민의 내부 규정입니다. 이를 어긴 라이더에 대한 페널티는 당연합니다.

문제는 라이더에게도 민원 발생 장소와 시간, 사유 등 정확한 내용을 설명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민원인이 누구인지 노출될 우려가 분명 존재하지만, 배달 일에 생계를 건 라이더들을 두루뭉술한 이유로 제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딜레마인 셈입니다.

이런 상황을 살펴본 콜센터 및 플랫폼 업계 관계자들도 난감해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시 내 한 콜센터 업체 임원은 "민원 내용과 처리 결과 등을 라이더와 음식점주 모두에게 공유하는 것은 정상적인 업무 프로세스"라며 "회사가 유사한 사례를 정책적으로 막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습니다.

플랫폼 분야 전문 변호사 B씨도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민원 처리 업무와 관련한 입법 공백이 원인"이라며 "기업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정부가 관련 법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배달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고속 성장했습니다. 지난 8월 기준 국내 배달 앱 사용자 수가 20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판이 커졌습니다.

배달 관련 민원 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소비자와 라이더, 음식점주 간 갈등을 유발하는 예민한 내용도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복잡다단한 민원 처리 업무를 개별 기업의 일로만 치부하긴 어려워진 것입니다.

입법 공백 속 위험 신호가 짙어지고 있는 배달 관련 민원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번지기 전에 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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