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붉은 말

2026-01-04

새해 신년사는 대개 성장률·고용·재정 같은 수치로 시작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붉은 말의 2026년’을 대도약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달력의 언어를 빌리는 순간 정책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로 설정된다. 정치는 판단의 문제보다는 타이밍의 문제가 되고, 다른 견해들은 ‘시기를 놓친 감각’으로 밀려난다.

오래전부터 정치는 동서를 막론하고 별과 계절, 주기와 순환 같은 질서의 언어를 빌려 왔다. 그래서 달력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정치의 정당화를 돕는 오래된 장치였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이미 하늘은 시간을 쪼개고 통치하기 위한 계산의 대상이었다. 별자리는 단순한 점괘가 아니라 달력의 뼈대였고, 주기는 불확실한 세계를 관리 가능한 리듬으로 바꾸는 도구였다. 이 체계는 헬레니즘 세계로 건너가며 더욱 정교해진다. 하늘을 믿음의 영역에서 구조화된 질서로 재편하는 결정적 고리가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다. 여기서 행성의 규칙적 운동은 인간이 시간을 측정하고 삶을 조직하는 장치가 된다. 그리스어 카오스(chaos)의 반대말인 코스모스(kosmos)는 ‘정렬된 우주’를 뜻하게 되었다.

그 뒤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통치를 카프리콘 별자리와 결부시켰고, 천체의 질서를 제국의 질서로 겹쳐 놓았다. 그가 이집트에서 약탈한 오벨리스크를 거대한 태양시계로 세운 것은 시간의 기계장치 자체를 자신의 통치 선전으로 바꾸는 노골적인 제스처였다.

시간의 언어는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크로드의 교차로였던 둔황 석굴 벽화에는 중국의 간지 체계와 더불어 별자리와 행성 도상, 천문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정치는 공동의 리듬을 필요로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붉은 말’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리듬의 첫 박자로서 제시된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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