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미래에 좌절한 유럽 Z세대, 극우에서 탈출구 찾다

2025-02-28

유럽 극단주의 광풍, 어떻게 볼 것인가

2024년 전 세계 인구 절반이 투표에 참여했고 유럽에서도 많은 선거가 있었다. 그런데 ‘선거의 해’에 주목받은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극단주의 정치였다. 벨기에·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큰 성과를 냈다. 벨기에 총선에서 플랜더스이익당(VB)은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얻었으며,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자유당(FPÖ)은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 국민연합(RN)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했고 총선 1차 투표에서도 선두를 기록했다. 독일대안당(AfD)은 튀링겐 주(州)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극우 정당이 주의회 다수당이 된 첫 사례였다. 대안당은 여세를 몰아 지난 23일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20.8%의 득표율로 사회민주당(SPD, 16.4%)을 제치고 2위 정당에 등극했다.

좌클릭·SNS 활용 악마 이미지 벗어

과거 극단적 인종차별과 혐오 정치로 악마 이미지를 가졌던 극우 정당이 이처럼 득세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대 중반 대규모 난민 유입과 이에 대한 반감은 극우 정당 약진의 밑거름이었다. 높은 인플레이션, 감당할 수 없는 주택비용, 암울한 고용 전망은 기성 정당을 불신하고 극우 지도자를 지지하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환경과 유권자 태도 변화만으로 극우 정치의 성장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극우 정당은 국민의 반감과 불안을 표로 바꾸는 정교한 전략을 개발했다. 사회복지를 강화하고 노동자 세금을 감면하는 좌파 정책을 가져왔다. 온화한 이미지를 얻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으며, 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슬림 이민자를 공공연하게 배척해도 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공급했다. 예를 들면 히잡 착용은 서구의 세속주의 원칙에 맞지 않고 할랄식 도축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통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극우는 점차 정상적인 정치세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근 유럽 선거에서 극우 정당에 투표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유럽 주요국에서 30대 중반 미만 Z세대 유권자의 약 30%가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는 극우를 지지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나치로 불리는 것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청년들이 극우를 선택한 고민의 출발점에는 ‘누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젠더·환경·평등·민주주의 등의 이슈는 과거보다 매력적이지 않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유럽 극우 정치세력은 꽤 오래전부터 선거에 참여해 왔지만 극우를 견제하는 봉쇄선(cordon sanitaire)이 있었다. 일반적인 정당들은 정부를 구성할 때 극우 정당과 절대로 연합하지 않았다. 극우 담론과 거리를 두는 것은 도덕적 규범으로 간주됐다. 극우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졌고 어떠한 대화와 타협도 금기시됐다. 2002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당시 자크 시라크가 극우 후보인 장마리 르펜과 TV 토론을 거부한 것은 대표적인 일화이다.

하지만 현재 극우에 대한 정치적 봉쇄가 붕괴하고 있다. 극우 정당이 인기를 얻으면서 지지층을 확대했고 중도 정당들은 극우의 아이디어를 사용해서 표를 되찾으려 했다. 중도우파 정당들은 극우의 전유물로 보였던 강경 이민정책을 수용하려 했고 덴마크의 경우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이 극우와 유사한 난민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류 정치의 우경화는 극우 정당의 활동을 정당화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극우를 모방한 중도 정당보다 오리지널 극우 정당을 선호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유럽 각국에서 극우 정당은 무시할 수 없는 의석을 확보한 상태다. 이탈리아 형제당(Fdl), 네덜란드 자유당(PVV), 헝가리 시민연대(Fidesz), 핀란드 핀란드인당(PS), 슬로바키아 국민당(SNS), 크로아티아 조국운동당(DP)은 연합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극우 정당은 이미 주류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주요 우파 정당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기간 원외 세력이었던 극우 정당이 의회에 들어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독일 중도우파 기민연(CDU)은 대안당의 지지를 얻어 국경통제를 강화하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에서 극우 정당의 동참으로 법안이 통과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의 중도 르네상스당이 총선 패배 이후에도 정부를 이끌고 있는데, 사실상 극우 정당이 내각의 임기를 결정하는 형국이다. 여당인 르네상스당은 제1당 좌파연합이 발의하는 총리불신임안을 제3당 국민연합의 도움으로 막아내고 있다.

극우 정당이 정상적인 정당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해도 극우 지지자들은 ‘극단주의’로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정권을 잡은 극우 정당이 생각보다 실용적이고 유럽과의 협력에 노력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극우 세력의 지속적인 인기 상승은 결과적으로 법치주의와 인권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극우 지지자는 사법부를 엘리트 집단으로 인식하고 비판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극우 정당이 집권한 후 사법부가 크게 약화하는 현상이 있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민자의 대규모 추방을 의미하는 재이주(remigration) 개념이 등장했다. 이민자들은 언젠가 조국에서 끌어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반이민 정책이 확대될 수 있다. 유럽이 오랜 세대에 걸쳐 쌓아온 휴머니즘과 포용 정신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오랜 세대 쌓아온 휴머니즘·포용정신 파괴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고 극우와 타협을 거부하는 집단은 극우 세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혹자는 극우에 대한 봉쇄와 비판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시민 교육을 강화하여 민주주의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극우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전체 국민의 30%를 넘는다면 이들을 고립시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투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성 정치에 반대하는 청년 세대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극우가 막상 집권하면 인기를 잃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극우 정당이 약속을 못 지키면 유권자들이 다시 온건한 정당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서구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취약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유럽 극우 세력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이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었다. 2024년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내건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ake Europe Great Again)”라는 표현은 유럽의회 극우 정당 그룹의 상징이 됐고, 트럼프의 최측근 일론 머스크는 연일 이 구호를 지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독일 뮌헨에 방문해서 유럽이 극우를 배제하는 봉쇄선을 세워 민주주의 가치를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이 이민자에 대한 반대 언론을 탄압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난했는데, 여기에는 쿠란을 불태우는 시위 정도는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승승장구하는 유럽 극우에게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기회이지만 정책적 모순을 드러내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호는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럽 상품 관세 인상은 극우 정당도 수용하기 힘든 요구이다. 높은 관세는 유럽 제조업에 부담을 줄 것이고, 극우 지지층인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는 프랑스가 미국의 속국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제안에 대해 덴마크의 극우 국민당(DF) 의원이 욕설 섞인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배타적인 국가주의가 확산하면서 유럽의 극우가 얼마나 단결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끌린다. 유럽 극우 정당 역시 유럽통합과 세계화의 자양분 위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유럽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에 맞서 유럽 극우 정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유럽 유권자들의 선택은 어디로 향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오창룡 국립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정치학 박사로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방문연구원을 지냈으며 고려대, 국회 입법조사처 등을 거쳐 지난해부터 부경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늘날의 유럽』 『현대 포퓰리즘』 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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