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4년 4월 22일 프로이센의 상업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사진)가 태어났다. 현재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 땅이 아니다.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가 돼 있다. 칸트가 살았던 18세기와 오늘날의 간극은 그만큼 크다. 당시 서유럽은 절대왕정 시대였다. 종교가 모든 이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구시대적 가치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갈릴레이·케플러 등에 의해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아이작 뉴턴은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를 출간함으로써 인류가 천체의 작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낙관적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계몽주의라 부르는 거대한 지적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칸트는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자 주역이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1784)이라는 에세이에서 칸트는 “계몽이란 우리가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고 설파했다. 여기서 핵심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데 있다. 미성년자와 달리 어른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존재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도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계몽이다.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정 반대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민심을 잃고, 선거에서 지고도 그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유튜브와 알고리즘에 빠진 채 ‘나는 계몽되었다’고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칸트가 태어난 지 301년이 된 오늘까지도 ‘계몽의 시대’는 끝나지 않은 듯하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