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하이에나를 볼 것이다

2025-09-09

지난해 여름, 손글씨로 써 내려간 10장 분량의 독자 편지를 받았다. 윤석열의 내란이 일어나기 전이다.

그는 시국을 나름 면밀히 진단하고, 윤석열에게 정권을 바친 배경을 분석했다. 4월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혁명의 주체가 아닌 민주당이 정권을 ‘주워서’ 5·16 반동 세력에 뺏겼고, 촛불혁명 때도 민주당이 정권을 거저 주워서 윤석열 반동 정권에 내주었다고 비분강개했다.

그러면서 진보 진영의 도덕적 타락을 개탄했다. 특히 586(50대 나이, 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을 매섭게 질타했다. 만약 윤상원, 박관현 열사가 살아온다면 전두환·노태우 잔당들을 쏘기 전에 586을 먼저 쏠 것이라고 했다. 전·노 잔당은 광주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86패당은 광주의 정신을 못 박았다고 탄식했다. “젊은 피로 수혈했던 286은 사자였지만, 386은 여우가 되었고, 486은 개가 되었고, 586은 하이에나가 되었습니다.”

과한 비유 같다. 하지만 젊은 날 사자처럼 용맹스럽던 투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형편없이 구겨질 때는 독자의 편지가 떠올랐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여의도의 하이에나. 얼마 전 이춘석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주식거래를 하다가 들켰다. 보좌관 명의로 차명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법사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의원은 사전에 인지한 미공개 정보를 주식 투자에 이용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조국혁신당에서 성비위 사건이 일어났다. 당의 실세들이 피해자를 회유하며 적당히, 어물쩍 넘기려다 만파를 불러왔다. 그들은 피해자와 이들을 돕는 당원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배은망덕한 것들.” “너 하나면 되지, 왜 여러 사람 고생시키느냐.” 배신자로 낙인을 찍고 따돌렸다. 이에 낙담한 강미정 대변인이 당을 뛰쳐나갔다. 시민대표로 영입됐던 조윤정 전 최고위원은 SNS에 강 대변인이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올렸다.

“그 강단 있고 씩씩하던 강 대변인, 그날 나는 강대의 눈물을 두 번 보았다. 기자회견 당시 강대의 눈물은 ‘포효’였다. 저 멀리서도 그 몸 떨림이 느껴졌다. 그간의 회한이 느껴졌다. (회견이 끝난 후) 커피숍에서의 눈물은 ‘미안함’이었다. 아직 어린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 그 어린 자식들을 돌봐주시는 친정엄마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아직 탈당한다 말을 꺼내지 못한 친정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그러나 나는 안다. 강대의 자녀들은 언젠가는 ‘약자 편에 서서 끝까지 함께한 정의로운 엄마 강미정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란 것을. 강대의 부모님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강대의 아버지께서 그날 기자회견 방송을 보시고, ‘조마리아 여사(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의 기도’를 두 번이나 보내주셨다고 한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강 대변인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성비위 전말을 비틀어 전하겠는가. 다른 복선이 있다면 어찌 칼날 위를 스스로 걸어가겠는가. 그럼에도 조국혁신당 의원 12명은 침묵하고 있다. 아무리 조국의 사당이라지만 당권파의 전횡을 꾸짖는 이가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약자 편에 섰던 정의로운 강미정’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상대를 몰아치던, 방송에 나가 바른말을 하던 맹장들이 포진하고 있건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조국을 비호하는 말만 들려온다. 이제 조국혁신당에 혁신은 사라지고 조국만 남았다.

이번 성비위 사건은 패거리 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 속에는 도덕 불감증, 권위주의, 위선, 내로남불 같은 것들이 붙어 있다.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노회한 꾼들이 활개를 치며 정치 신인들의 꿈과 열정을 짓밟고 있다.

앞으로도 초심을 팽개치고 돈과 권력을 좇아 여의도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힘 있는 여당에서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국민의힘은 모여 있으나 사실상 뿔뿔이 흩어져 있어 지리멸렬하다. 하이에나들이 준동하기 좋은 때이다.

개혁의 동력은 내부에서 나온다. 정치의 요체인 ‘멀리 있는 자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자 기쁘게’(공자) 하려면 외부보다 내부가 튼실해야 한다. ‘빛의 혁명’의 걸림돌은 극우 세력이나 야당의 반발이 아니다. 진보 진영의 나태와 도덕적 결핍이 더 위험하다. 한국 정치의 주력인 586은 자신의 발밑을 보라.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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