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무역 질서에 커다란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은 전통적 자유무역 원칙에서 벗어나 자국 중심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세계무역기구(WTO)를 약화하고 양자 협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 분절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세계 각국은 공급망 재편 압박에 직면했다. 특히 산업 전반의 근간이 되는 첨단 세라믹 소재 분야는 이러한 변화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내 현실을 보면 2022년 기준 소·부·장 관련 수입 품목 4458개 중 수입액 100만달러 이상 품목 수는 1719개에 달한다. 이 중 특정국 수입 의존도가 50%를 넘는 품목이 많아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취약한 산업 구조를 가진 상황이다. 코로나19, 미-중 무역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복합적 외부 변수는 공급망 내재화, 블록화, 자원 무기화 방향으로 산업을 재편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 전략에도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2022년 12월 시행한 '소·부·장 및 공급망 안정화 특별법'을 계기로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을 발표하고 반도체 희귀가스, 흑연, 희토 영구자석, 요소 등 185개 공급망 안정 품목을 선정했다. 이들 품목 특정국 수입 의존도를 2022년 평균 70%에서 2030년까지 50% 이하로 낮추는 게 목표다. 185개 공급망 안정 품목에는 세라믹 소재 고의존 품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차전지(19개), 반도체(17개), 디스플레이(12개), 자동차(11개) 등 전략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과 소재가 여기 해당한다. 첨단 세라믹 소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방산 등 고부가가치 산업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원료가 특정 국가, 특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60~70%를 차지하고 이를 자국 산업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외교적, 정치적 이슈에 따라 공급 단절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적 이슈와 변화 속에서 GVC 차원에서의 공급망 다변화는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국내·외, 전·후방산업 등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가치사슬, 즉 전체 가치사슬(TVC:Total Value Chain) 구축이 요구된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 등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베트남, 인도 등 신흥시장으로 생산기지를 확장하며 전략 광물 국가 비축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 자원 재활용 및 순환경제 기반을 함께 육성해야 하며 사용 후 배터리, 폐태양광 패널, 폐영구자석 등에서 고부가가치 자원을 회수하는 기술 개발과 산업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북아 및 아시아 중심 지역 가치사슬을 재구축하고 국내 산업 간 협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스마트팩토리와 인공지능(AI) 기반 공급망 관리(SCM) 시스템을 통해 디지털 기반의 공급망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술 측면에서는 희토류 대체 소재인 페라이트, 복합세라믹, 나노소재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고기능성 국산 자재의 상용화 및 첨단 가공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희토류는 친환경 자동차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2050 탄소중립 목표와 맞물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7년 17만t에서 2021년 29만t으로 연평균 12%씩 증가했으며 2040년까지 글로벌 수요는 최대 7배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희토류 생산 및 가공은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특히 중희토류는 중국과 인접한 지역에 편중돼 있어 공급 리스크가 크다. 이에 따라 회수 및 재활용 기술 개발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자원 확보 전략에서 필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세라믹기술원은 첨단 세라믹 소재 공급망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 세라믹 소재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국제협력 및 친환경 재자원화 공정기술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 목표는 해외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을 통해 첨단 세라믹 소재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 외 베트남 등 신규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희소 세라믹 광물 자원화 및 고품위화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두 번째 목표는 친환경 재자원화 공정기술 확보다. 기존 폐자원 재자원화 기술은 오염물질을 대량 발생시켜 국제 환경 규제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친환경 재자원화 공정 스케일업 및 고품질화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첨단 세라믹 소재 산업은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이 낮고 핵심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교란에 취약하다. 실제로 2020년 기준 세라믹 산업 무역수지는 광물 원료에서만 44억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산업구조를 탈피하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면 소재 기술 자립화, 공급망 다변화, 글로벌 협력의 세 축을 기반으로 정책과 기술 개발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첨단 세라믹 산업을 대한민국 미래 산업 전략 자산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국가 12대 전략기술 확보의 근간이 되는 세라믹 소재와 이를 구성하는 희토류 등 특정국가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 산업 성장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산·학·연 R&D 촉진과 기업의 적극적 투자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책이 필요하다.
이성민 한국세라믹기술원 부원장
〈필자〉 이성민 부원장은 1969년생으로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재료금속공학을 전공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재료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한국세라믹기술원 입사 이후 엔지니어링세라믹센터장과 이천분원장을 역임했으며 2023년부터 부원장에 부임해 세라믹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112편의 학술논문과 73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주요 수상 내역으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2022), 산업통상자원부 세라믹산업 유공 장관표창(2019),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201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