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에 일어나 미국 LA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된 팰리세이드 화재의 용의자로 검거된 사람은 그 지역에 사는 20대 청년이었다. 경찰은 그 산불을 고의에 의한 방화로 결론 내리고 수사하던 중, 화재를 신고한 사람 중에서 조너선 린더크넥트라는 청년의 행적이 수상한 것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디지털 흔적에서 범행 증거를 찾아냈다.
경찰은 우선 용의자가 소방서에 신고하면서 말한 자신의 위치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휴대폰의 위치 정보에 따르면 그는 화재가 진행된 곳 바로 옆에 있었다. 더 수상한 건, 그가 화재 전후에 챗GPT와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그는 화재 몇 달 전 챗GPT에게 디스토피아적인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해서 불타는 숲에서 사람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받았고, 얼마 후에는 챗GPT와의 대화 중에 자기가 “성경을 태웠는데, 기분이 좋고 해방감을 느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재 발생 후에는 챗GPT에 “담배 때문에 화재가 나면 내 잘못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수사관들은 팰리세이드 화재의 원인이 담배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대화는 용의자가 고의가 아니라는 핑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챗GPT에게 일종의 법률 상담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에서 채택될 경우 AI 챗봇에게 털어놓은 말이 증거로 사용되는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인이 컴퓨터나 휴대폰에 남긴 흔적이 증거로 채택되는 건 이제 흔한 일이고 범죄 수사에서 디지털 증거를 찾는 일은 당연한 절차가 되었지만, AI와 대화한 내용은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비밀을 챗봇에 털어놓지만, 비밀 유지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상대는 변호사밖에 없다. AI 챗봇은 우리의 비밀을 지켜주지 못한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