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보다 낫다”··· 동남아 범죄단체 추적 자경단까지 등장

2025-10-12

텔레그램서 동남아 범죄 혐의자 신상 공개… 구독자 1만5천명

미온한 정부 대응에 피해자 가족도 찾아… ‘사적 제재’ 우려도

“캄보디아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한 정보처예요. 경찰, 검찰보다 나아요.”

지난달 16일,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가족이 캄보디아로 간 뒤 연락이 끊겼다며 하소연하던 여성에게 한 참가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천마’에 제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텔레그램 링크를 건넸다.

링크를 타고 들어간 채팅방 이름은 ‘범죄와의전쟁2’. 참여자 수는 이미 1만5천 명을 넘어섰다. 방 안에는 누군가의 여권 사본, 얼굴 사진, 계좌번호 등 신상정보가 끝없이 올라와 있었다.

1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천마’로 불리는 인물은 이 텔레그램 채널의 운영자로, 지난 5월부터 캄보디아와 동남아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마약, 성매매 등 범죄 관련자들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그는 범죄 의심자들의 사진, 주거지, 여권 정보 등을 게시하며 사실상 ‘사이버 자경단’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 채널은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 보코산 지역에서 사망한 20대 대학생 A씨 사건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A씨가 범죄조직의 강요로 마약을 투약하는 영상이 처음 공개된 곳이 바로 ‘범죄와의전쟁2’였다.

이곳에는 범죄 조직 검거 장면, 일상 사진, 통화 녹취록, 대화 내역, 범행에 이용된 대포통장 계좌 등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도 다수 포함돼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적 제재’이지만, 정부와 현지 당국의 대응이 더디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천마 채널은 사실상 ‘대체 수사기관’처럼 인식되고 있다. 구독자들은 천마가 운영하는 별도의 2천6백여 명 규모의 대화방에서 그를 ‘형님’이라 부르며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정의는 살아 있습니다” 등의 메시지를 남긴다.

천마는 “목적은 범죄 예방”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수사기관이 내사 착수부터 검거까지 수개월, 때로는 수년이 걸리지만 그 사이에도 수많은 범죄가 발생한다”며 “범죄자 신상 공개가 검거 속도를 높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사적 제재라는 꼬리표가 붙는 건 유감스럽지만 경찰에도 관련 자료를 공유하며 협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보 취득 방식에 대해서는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다”고 밝혔다. 그는 “텔레그램 제보만으로는 사실 확인이 어려운 사건이 많다”며 “현지 취재와 교류를 통해 팩트체크를 거친다”고 짧게 답했다.

채널의 영향력이 커지자 부작용도 나타났다. 지난달 15일에는 전국의 일부 경찰관에게 ‘범죄와의전쟁2’ 채널 링크가 담긴 문자메시지가 일제히 발송되는 일이 있었다. 천마는 “나를 음해하려는 누군가의 행동”이라며 “살해 협박과 신상 공개 협박도 수시로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천마 채널의 확산이 정부 시스템 불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외교부와 경찰의 현지 대응이 미흡하다는 인식이 누적되며, 시민들이 비공식 경로를 ‘정의 구현’의 대안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사적 제재는 감정적 대응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며 “범죄자 신속 검거를 위해선 수사기관에 제보해 협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방식은 사생활 침해와 사회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이런 활동이 상업화되거나 정치적 목적과 결합할 경우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외교부에 총력 대응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최근 캄보디아 범죄 관련 보고를 받고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외교부가 외교적으로 총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외교부는 이에 따라 캄보디아 정부의 협조 확보를 포함한 다양한 조치를 취해왔으며, 필요하면 추가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지난 8월 대학생 A씨가 캄보디아 현지에서 범죄조직에 의해 고문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상대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전날 쿠언 폰러타낙 주한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해 이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외교부는 아울러 수도 프놈펜에 대한 여행경보를 특별여행주의보로 상향 조정했다.

[전국매일신문] 박문수기자

pms5622@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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