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돌림, 학습효과, 외딴섬’···의대생들이 대규모 유급에 이르기까지

2025-05-09

의대 재학생 1만9000여명 중 8300명가량의 대규모 유급이 현실화했다. 정부가 “더 이상 학사 유연화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지만 42%의 의대생들은 유급을 피하지 않았다. 의대생들은 수업 등록을 해 제적은 면하고, 수업 거부는 이어가며 처분 수위가 한 단계 낮은 유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의정갈등이 촉발된 지난해 3월부터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고, 올해에도 동맹휴학 기조를 이어가면서 2년째 수업에 불참했다. 의대 증원의 수혜를 입은 25학번의 상당수도 동맹 휴학 대열에 합류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들은 시종일관 정부에 책임을 돌리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유급이 확정된 이날도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비대위원장은 “적법하게 제출한 휴학원이 승인됐다면 유급·제적은 없었을 것”이라며 대규모 유급의 책임을 정부에게 돌렸다.

유급 대상은 대체로 본과에 집중됐지만 예과생들도 적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해 3월 입학해 3학기째 수업을 거부하다 유급 처분을 받게 됐다. 폐쇄적인 의대 문화를 상대적으로 덜 익혔을 24학번까지 유급을 감수하게 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던 것일까.

‘감귤’, ‘감사한 의대생’ 수업 복귀 방해

“버티면 얻어낸다”는 학습효과까지

‘외딴 섬’에 갇혀 그들만의 생각 강화

정부와 의료계 일각에선 상당수 의대생들이 수업 복귀를 하지 않은 데에는 이른바 ‘수업 복귀 방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서울의 사립대 의대 교수는 “가뜩이나 좁은 의료계에서 학생들(의대생)이 따돌림받을 각오를 하고 수업 복귀를 결정하는 게 쉽진 않은 분위기”라고 했다.

의정갈등이 촉발됐던 시점부터 등장했던 은어가 ‘감귤’, ‘감사한 의대생’ 등이었다. 동맹휴학에 동참하지 않고 수업에 복귀한 의대생을 ‘조리돌림’하는 단어였다. 의료계 커뮤니티나 텔레그램 등에는 수업 복귀 의대생을 감귤로 칭하며 개인 신상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한데 묶여 유포됐다. 경찰이 지금까지 수업 복귀자 명단 공개, 수업 불참 강요 등으로 수사 중인 사건만 20건이다.

복수의 피해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한 피해 학생은 ‘감귤’이라는 단어만 접하면 스트레스가 심해진다고 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복귀한 학생들이 안심하고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버티면 얻어낸다’는 학습효과도 의대생들 사이 ‘유급은 감수하자’는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을 승인해줬다. 이전까진 “동맹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교육부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이후 교육부 주도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기로 결정했지만 강경파 중심의 의대생 단체인 의대협을 중심으로 이후에도 ‘수업 거부’ 기조를 이어갔다.

올해 유급 인원이 확정되기 직전까진 의료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부가 결국은 학사 유연화를 해줄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졌다. 이 같은 소문의 근간에는 ‘버티면 얻어낼 수 있다’는 의대생들의 믿음이 깔려 있다. 의대를 둔 비수도권 대학 총장은 “정부와 학생들 사이 낀 입장에서 늘 양쪽을 이해해보려는 처지”라면서도 “앞으로 또 예외를 허용하면 학생들(의대생)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것 같고, 이는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예비 의료인인 의대생들이 ‘외딴섬’에 갇혀 그들만의 생각을 강화했다는 우려도 있다. 의대생들이 낸 성명이나 논평을 보면 ‘투쟁’ ‘압제’ ‘저항’처럼 스스로를 피해자나 약자로 정체화하는 단어가 여럿 등장한다. 의료계 밖에서 볼 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서울대의 한 보직 처장은 “의대는 대학 내 대학 같은 느낌이 있다”며 “예를 들어 서울대 의대는 ‘서울 의대’라고 칭하며 별도의 교육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공감대가 의대 안팎에 형성돼 있다”고 했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는 더 이상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의대 증원 추진에는 반대하지만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거나 의료인의 현장 복귀가 필요하다는 여론은 더 높다. 인요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2025 의료정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1%가 의료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에는 73.3%가 동의했고 전공의와 의대 교수가 복귀하라는 의견(65.3%)과 의대생이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75.8%)는 목소리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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