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진한 송이향 풍기는 가을, 미각의 사치 누려볼까

2024-10-14

필자는 1996년 강원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가까이서 겪었다. 시내 전역에 야간통금이 내려졌고 군부대의 추적이 계속되는 가운데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때마침 송이버섯 철이었고 버섯을 채취하러 간 민간인이 총기 오발로 사망한 것. 위험을 자초하면서 입산 금지된 곳에 들어간 이유는 송이버섯 한철 수확만으로도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송이버섯은 인공 재배가 어려운 데다 생육조건도 까다로워 서양의 송로버섯만큼이나 값비싼 식재료다. 삼국시대부터 왕에게 진상됐고 조선시대 영조 임금은 “송이, 꿩, 고추장, 생전복은 네가지 별미”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 사신까지 조선의 송이를 선물로 요청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나온다. 고려시대 문신 이인로는 송이의 향을 ‘복령’에 비유했고, 목은 이색 역시 “신선이 되는 빠른 길은 불로초가 아니라 송이버섯을 먹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오늘날에도 송이의 명성은 여전하다. 북한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 관계가 원만하던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도 송이버섯을 선물로 선택했다. 한국 송이의 품질은 중국·일본에도 알려져 신라호텔 상무이사를 지낸 후덕죽 셰프는 송이버섯을 ‘뇌물’로 바치고 중국요리 레시피를 알아왔을 정도라 한다. 기후가 따뜻하고 소나무 숲이 대부분 훼손된 일본에서는 송이버섯이 그야말로 산삼만큼 대우받는다.

또한 송이버섯은 강원 양양, 경북 봉화·영덕·울진의 ‘지리적 표시제’에도 등록됐다. 농작물이 아니라 임산물로 분류되며 허가 없이 채취하면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갓이 완전히 벌어지기 전 상태를 최상품으로 치고, 펴진 후에는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이 부담된다면 냉동 송이를 선택하는 것도 합리적인 방법이다.

최근 삼림 환경이 악화하고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송이는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2020년 7월 송이버섯은 하마·치타·순록 등과 함께 멸종위기 취약종(VU)으로 지정됐다. 작황 자체는 해마다 편차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올해는 긴 불볕더위로 인해 경매 입찰가가 폭등했다고 한다. 귀한 먹거리인 만큼 지속가능하게 보존하려는 노력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송이는 생으로도 먹지만 익히면 향이 더 살아난다고 한다. 얇게 썬 송이를 살짝 구워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솥밥으로 만들어도 괜찮은데 몇조각만 올려도 강렬한 향이 코를 즐겁게 한다. 일본식 송이버섯 요리의 대표주자로는 질주전자 찜인 ‘도빙무시’가 있다. 어떤 레시피든 풍미를 죽이지 않기 위해 강한 양념은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

값비싼 송이를 ‘득템’ 했다면 조금 색다른 조리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 있는 일식당 ‘모모야마’는 가을 계절 메뉴로 송이 코스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그중 도빙무시에는 송이와 함께 옥돔과 새우가 들어갔고 은행·파드득나물이 장식으로 올라온다. 초귤즙을 뿌리고 먼저 국물을 마신 후 건더기를 먹는다.

그밖에도 맑고 슴슴한 박국에 가늘게 찢은 송이를 넣어 향을 더하거나 흰죽에 올리는 레시피도 있다. 특유의 향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담금주로 만드는 것이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