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품위있는 죽음과 장기 기증

2025-10-21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5만 5000명이 누군가의 장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기증 의사를 밝히는 이는 한 해 400명 남짓. 이식을 받기까지 짧게는 4년, 길게는 7년(신장 기준)을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의 끝을 보지 못한 채 매일 8.5명이 생을 마감한다. 며칠 전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작가 백세희(35) 씨가 장기 기증으로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

장기 기증에서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멀다. 고령화와 의술의 발전으로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기증은 제자리걸음이다. 인구 100만 명당 기증자 수는 한국이 7.75명으로 대만(5.77명), 일본(1.13명)보다 많지만 스페인(53.9명) 같은 서구 국가와는 비교조차 어렵다. 법적으로 뇌사자만 기증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는 점이 큰 걸림돌이다. 보다 못한 정부가 처음으로 장기 기증 활성화를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기증 희망 등록기관을 대폭 확대하고 기증자 예우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뒤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도 기증이 가능하도록 법을 고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으로 전체 기증의 절반이 연명의료 중단자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물론 논란도 뒤따른다. 생명권, 가족 동의, 전통적 인식이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얼마 전 ‘본인 의지만으로 기증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를 둘러싼 가짜뉴스가 퍼지며 결국 철회됐다.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도 있다. 연명의료 중단을 서약한 사람이 올 9월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었다. 4년 전보다 세 배 늘어난 수치로 ‘품위 있는 죽음’을 고민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연명의료 중단과 장기 기증은 결국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언뜻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누군가에게 삶을 건네는 용기, 그것은 결국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마지막 자기 위로이자 숭고한 사랑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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