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천년고찰 고운사가 인공조림이 아닌 자연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광범위한 산림지역에 대한 최초의 자연복원 시도로, 숲 회복에 야생동물이 미치는 영향과 식생의 회복 탄력성 평가 등도 함께 이뤄질 전망이다.
고운사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서울·안동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등은 4일 고운사에서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브리핑을 열고 본격적인 현지 생태계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불교 종단이 사찰림 자연복원을 공식 선언한 첫 사례이다. 수관화(나무 줄기까지 피해)를 입은 광범위한 산림 지역에서 실시되는 최초의 자연복원이기도 하다.
고운사는 사찰림 249㏊ 가운데 97.6%인 243㏊가 지난 3월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 이는 산불 피해를 입은 국내 사찰림 중 최대 규모다.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과 ‘가운루’도 불에 탔다.

현지 생태계 조사는 이규송 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과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연구팀이 맡았다. 이들은 산불 피해 산림의 자연 회복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계획이다.
이규송 연구팀은 산불 피해 강도 분석, 현존식생도 작성, 토양 침식 평가 등 식생 회복탄력성을 분석한다. 한상훈 연구팀은 카메라 트랩과 초음파 장비를 활용한 중대형 포유류 및 박쥐류 조사 등 야생동물 서식지 조사를 담당한다.
이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국내 산불 피해 지역은 임업적인 관점에서 진단 없이 인공 복원이라는 처방만 이뤄지며 문제가 반복됐다”며 “피해 지역의 현존 식생도를 작성하고 토양 안정도를 평가해 어떠한 복원 방식을 선택할지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훈 박사는 “포유류와 조류 등 야생동물은 식물 종자를 널리 퍼뜨리는 숲의 관리자”라며 “숲이 원래 모습을 회복하는데 기여하는 야생 동물의 생태적인 기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겠다”고 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프로젝트로 국내 산림 관리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공조림 중심의 산림 관리 정책의 한계점에 대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산불로 피해를 입은 나무를 제거하고 새 나무를 심는 방식의 인공복원을 추진해오고 있다. 하지만 인공복원 과정에서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를 심는 점과 기존 숲을 베어 내 산사태 등의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산림 관리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것을 지시하고 산림사업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한 바 있다.
최태영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인공복원으로는 반복되는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 회복이 가능할 뿐 아니라 더 효과적임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의 중간보고서는 오는 9월, 최종 보고서는 올해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단체는 조사 결과를 통해 2026년부터 정책 제안과 자연복원 유도 활동 등을 본격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