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정치적인 건강, 대통령발 트라우마

2024-10-28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11월5일로 다가왔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 누가 된들 무슨 상관이랴 하겠지만 도널드 트럼프(45대 대통령)가 재선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정치학자가 아닌 의사·인류학자 입장에선 제일 먼저 시민의 건강이 우려된다. 건강은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의료 및 사회복지제도의 변화에 의한 영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며칠 전 국제학술대회에서 정신질환을 연구하는 미국 인류학자를 만났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학생들이 받을 정신적 트라우마를 대비하기 위한 학교 차원의 대책 회의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미국인이 2021년 1월 이후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제로 10월24일 미국의 정신건강 전문가 230여명은 트럼프 후보가 ‘악성 자기애’라는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의 우려는 단지 국가 운영에 대한 부적격성을 지적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닐 테다. 2023년 12월 미국의 잡지 ‘디 애틀랜틱’에는 “만일 트럼프가 재당선된다면 미국인의 정신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그리고 부제는 “우리의 몸은 만성 스트레스를 감당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였다. 그렇다. 미국인은 2021년 이후 잊고 있었던 트럼프 재임 시절의 각종 조롱과 도발, 선동과 반감, 비논리적 주장, 언어적 절제 상실, 과대망상과 복수심에 가득 찼던 발언을 트라우마처럼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최근 ‘더 뉴요커’(2024년 10월14일)에는 작가 애덤 고프닉의 “트럼프가 다시 승리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경각심을 가져야 할까?”라는 칼럼이 실렸다. 그는 트럼프를 한 개인이 아닌 ‘트럼피즘’이라는 현상으로 해석한다. 그는 오늘날 가장 미국적인 특징으로 극단적인 ‘경쟁’과 공격적인 ‘고발’을 지적한다. 암을 치료한다는 병원마저 극단적 경쟁을 하고, 모든 사안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로 변호사를 통한 고발로 이어지는 현실! 고프닉은 트럼프가 바로 이러한 현실에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심을 고조시켜 일종의 내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복수심에 찬 그가 모든 소셜미디어 공간을 분노로 가득 찬 참여의 공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전망이 극단적 예측이라 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임기가 종료되었던 2021년 1월 미국 인터넷 언론 ‘복스’에는 트럼프 집권 시기 시민의 정신건강에 미친 영향에 대한 “사람들은 괜찮지 않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 심리학협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의 정치적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느낀다’에 대한 답변이 2016년 56%에서 2018년 62%로 증가했다. 그리고 2016년 트럼프 당선 직후 심리학자 제니퍼 패닝은 ‘트럼프 불안장애’라는 용어를 통해 당시의 스트레스를 설명했다. 이민자, 성소수자, 흑인, 원주민, 유색인종은 그의 등장 이후 일상에서 사회적 불안에 놓여 있었고, 실제로 증오범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들은 항상 ‘싸우거나 도망쳐야’(fight or flight) 하는 긴장상태 속에 빠져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과거 트럼프라는 정치적 인물의 등장은 가장 먼저 미국 사회에 만성적 불안과 스트레스의 증가를 초래했다. 다음으로 사회적 불안과 분열을 심화시켰으며, 증오와 분노의 지속적 촉발로 인해 시민들을 정서적으로 탈진시켰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규범을 파괴함으로써 무기력감에 빠뜨렸다. 그리고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그의 재등장에 불안해하는 시민들은 기시감에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의 공중보건학 교수인 아라인 T 제로니무스는 책 <웨더링Weathering>을 통해 불공정한 사회 속 만성 스트레스가 구체적인 신체적 건강의 위험 요소임을 강조한다. 특히 인종차별, 계층차별, 성차별 등과 같은 구조적 불평등이 차별의 대상자를 각종 질병(심혈관질환, 암, 조기사망 등)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바위가 바람과 비 등 각종 ‘풍화’ 현상에 의해 천천히 파괴되어 가듯 말이다. 그런데 트럼프 발 트라우마는 그 속도와 범위가 온갖 토네이도를 동반한 태풍에 가깝다. 그 혼란 속에 서로가 생존을 위해서 경쟁과 고소를 통한 내전이 확장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강 건너 남의 일에 그칠까. 우리의 정치는 얼마나 시민들의 건강에 이로울 것인가 묻고 싶다. 마무리에 들어간 국정감사를 지켜보는 한국인의 심정은 과연 대선을 앞둔 미국인의 심정이 얼마나 다를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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