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도 영화 제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영화인들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서 메시지를 전할 겁니다."
이란 당국의 체포와 가택 연금, 출국 금지 등 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온 자파르 파나히(65) 감독의 '선언' 같은 말이다.
이란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인 파나히 감독은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써클'(2000)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택시'(2015)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파나히 감독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한 아시아 최초의 감독이 됐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전날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파나히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하얀 풍선'(1995)으로 제1회 부산영화제를 찾은 뒤 여러 작품들을 부산에서 선보여왔다.
그는 프랑스와 공동 제작한 '그저 사고였을 뿐'이 아카데미 공식 출품작(프랑스 대표)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영화가 제작된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품할 수 있다는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런 규정 때문에 내 영화 '오프사이드'(2006)가 아카데미 출품이 좌절된 적이 있다"며 "독립영화제작자들이 힘을 모아 이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사회적인 영화 제작자'라고 규정한 그는 "20년 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아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섰던 경우도 있다"며 "집 안에서 혼자서 스스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고 돌아봤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차내에 몰래 장착한 카메라로 '택시'(2015)란 영화를 찍은 경험도 들려줬다. "영화 제작 금지 처분 덕분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었고, 모든 아이디어가 내면에서 나오는 경험도 했다"면서다.
파나히 감독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소수의 제작진과 함께 집에서 몰래 영화를 찍은 뒤 이를 케이크에 숨긴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담아 밀반출시키는 방법으로 해외 유수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폐쇄적 국가들에서 영화를 만들려면 검열, 삭제 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서 "나와 함께 일했던 각본가가 감옥에서 징역을 살다가 이틀 전 풀려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국의 탄압 속에서도 계속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으로 그는 '아내'를 꼽았다.
"영화 만드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가 영화를 안 만들면 아내가 저를 버릴 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만들어야 아내를 지키고 결혼을 유지할 수 있어요(웃음)."
파나히 감독은 "우리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첨단 기술에 힘입어 젊은 세대가 혁신적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면서 "영화 제작을 하지 않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객이 원하는 걸 만드는 대다수의 영화들 외에 자신 만의 관점을 담아 관객을 따라오게 만드는 영화 또한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또한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이란 사회의 모순과 억압을 파나히 감독의 예리한 시선으로 고발하는 영화다. 다음 달 1일 개봉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내 관객을 만난다.
그는 "이 영화를 보는 건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