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 스위스의 고립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8-04

78세의 고령에 취임한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4년 임기 내내 잦은 말실수로 구설에 올랐다.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은 미국 취재진과의 대화 도중 ‘핀란드와 스위스가 나토 회원국 가입을 신청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핀란드는 맞으나 스위스가 아니고 스웨덴이었다. 잘못을 깨달았는지 바이든은 곧장 “오 ‘스위스’라니, 맙소사! 내가 실수했어요”라며 “나토 확대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가 보네요”라고 둘러댔다.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까지 나토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바이든의 농담에 좌중에선 폭소가 터졌다.

스위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나라가 선택한 것이 바로 중립 노선이다. 프랑스 제국 나폴레옹 황제가 일으킨 정복 전쟁으로 유럽 대륙 전체가 혼돈에 빠져 있던 1812년 스위스는 열강을 상대로 “우리는 중립국”이라고 부르짖었다. 181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나폴레옹 몰락 이후의 유럽 국제 질서를 논하는 회의가 열렸다. 열강은 스위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영세 중립국’ 지위 부여에 찬성했다.

덕분에 20세기의 저 끔찍한 두 차례 세계대전 기간 스위스는 열외(列外)할 수 있었다. 중립국이자 평화 애호국이란 강점을 내세워 유엔의 전신에 해당하는 국제연합 등 수많은 국제기구들을 유치했다. 하지만 정작 국제기구를 대하는 스위스의 태도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스위스가 유엔 회원국이 된 것은 분단 국가인 남북한보다 10여년 늦은 2002년의 일이다. ‘우린 매사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라는 강박 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비슷한 중립국인 오스트리아가 나토 가입은 거부하면서도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활동하는 것과 달리 스위스는 나토는 물론 EU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세계 각국과 관세 협상을 진행해 온 미국이 스위스에 39%나 되는 고율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31일(현지시간)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대통령과 통화한 뒤 갑자기 격분하며 관세율 상향을 지시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협상에 임하는 스위스 정부 대표단의 무성의한 태도가 트럼프를 자극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대부분 EU 회원국인 유럽 국가들이 미·EU 무역 협상 타결로 15% 관세율을 적용받게 된 점을 감안하면 스위스 국민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영세 중립국이란 점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는데, 실은 유럽에서 고립(孤立)된 나라일 뿐이란 민낯이 드러난 것 아닌가. 스위스가 EU 가입을 적극 검토하고 나서지 않을까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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