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장군이 물러나면 성질 급한 더위가 쫓아올 줄 알았는데, 이상스레 싸늘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요사이 몇 년은 봄날이 여름과 겨울 사이의 칸막이 같았다. 며칠 안되는 봄 동안 꽃을 피우려고 하는지 온갖 꽃나무가 다급하게 플래시몹을 하듯 다같이 피지 않았던가. 사실 올해는 봄꽃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연말부터 이어진 온갖 사태와 혼란에 더해 참혹한 화마마저 영남지방과 전국을 덮쳤으니, 그저 비가 내려 불이라도 꺼 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앞섰기에 그렇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적만 해도 봄꽃이 피는 순서가 있었다. 산수유가 먼저 피고, 목련이 소담스레 열리기 시작하면 개나리가 피었다. 양지에 먼저 핀 개나리에 잎이 파릇파릇 올라오려는 때에 진달래가 따라 한창 만발할 즈음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우리 중학교는 터를 잡은 지 오래된 곳이라 아름드리 꽃나무들이 많았다. 주말엔 애순이의 눈꽃 같이 풍성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 찍으러 오는 신부들도 있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한창이면서 수양벚꽃까지 흐드러진 때에 딱 맞춰 아빠의 카메라를 빌려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려고 고심해 고른 날이 딱 요맘때의 사월이었다. 그래서인지 기후환경이 변해도 여전히 사월 하면 바람은 차가워도 햇살은 따사롭고 공기 중에 꽃향기가 떠다니는 이미지가 있다.
한편 고등학교는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아 무척 추운 곳을 다녔다. 얼마나 추웠는지, 학교 앞마당에서 송이눈을 맞으며 내려가다 한길 가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눈이 진눈깨비로 바뀌어 있을 정도였다. 학생들은 4월 중순까지 겨울코트를 입고 등교했고, 매일아침 서울이 아닌 중부산간지방 일기예보를 참고해야 한다는 우스개를 주고받았다. 그런 사월 초에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다. 서울역에서 출발할 땐 만전을 기해 두툼한 겨울점퍼를 입었는데, 경주에서는 모두 벗어 던지고 반팔 면티차림으로 돌아다녔다. 남쪽 지방은 산그늘마저 진달래가 가득히 피어 있어, 옆자리에 앉은 담임 선생님과 이리 흔한 진달래가 국화가 되어야 한다고 실없는 농담을 했던 기억이 선하다.
대학생이 되니 서울의 사월도 제법 포근했다. 고3 학생처럼 별을 보며 다니지 않기 때문이었다. 매년 4월 초에는 2학년 전체가 안면도로 채집여행을 갔다. 하루는 섬 안의 야산에 올라 식물 표본을 찾고, 다음날은 바닷가에 나가 해양생물을 채집하는 일정이었다. 고등학생때와는 달리 자세한 안내장도 준비물에 대한 알림도 없었기에,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여쭈었다. 4월의 안면도에서는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느냐고. 어부들의 갯벌바지라도 구해 와야 하나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갸우뚱하시더니 편한 것 입으면 된다며, 요즘 학생들은 민소매나 반바지도 잘 입더라고 덧붙이셨다. 엑스세대의 배꼽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대망의 채집여행날, 안면도는 따뜻했다. 지금은 자연휴양림이 된 산등성이를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내리면서, 교수님에게 여쭤 보기를 잘했다고 뿌듯해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태풍이 왔는지 기온이 뚝 떨어지고 새벽부터 매섭게 바람이 불었다. 학생들끼리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해뜨기 전부터 대토론이 벌어졌다. 날이 추우니 따뜻하게 입자는 주장과, 교수님이 짧은 옷 입으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이 격돌했다. 결국 반바지 안 입으면 교수님께 혼날 거라는 두려움이 승리했다. 학생들은 전원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나가 칼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우리 앞에 교수님 두 분은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을 하고 나타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때만큼 강한 배신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우리에게 민소매를 입으라고 일러주신 바로 그 교수님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시기까지 했다. 아니, 춥지 않아요? 역시 젊음이 좋군요!
엄밀히 따지면 교수님이 민소매 입어야 한다고 지시하신 적은 없다. 대학생쯤 되었으면 지금 날씨가 더운지 추운지, 내가 옷을 더 입어야 하는지 아닌지, 내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 정도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른바 ‘범생이’로 자란 나와 친구들은 남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두려웠고,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혹여 교수님께 혼날까, 자기 몸이 축날 결정을 한 것이다.
사월이 다 같은 사월이 아니다. 눈이 내리기도 하고 여름날처럼 덥기도 하다. 사월이라는 단어에 목맬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맥락에 놓여있는지를 파악하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치과원장이 되어 겪는 사월은 심지어 삭막하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치과는 더 썰렁하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별난 잣대를 가진 것이 이른바 심평의학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작년부터 시작된 비급여보고는 이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영역까지 나라가 개개인의 정보를 심평의학적으로 재단하고 통제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느낀다. 주변에서 보고를 앞두고 어려움과 걱정을 호소하는 분들도 제법 계시다. 나는 우리가 ‘있을 리도 없었던 교수님의 노함’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나서서 헐벗고 찬바람을 맞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월은 춥고 정치경제적으로는 혼란할지언정, 대다수의 우리 치과의사 회원들이 충분히 바르게 살며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자긍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회가 언제나 회원의 보루가 되어 주리라고 믿는다. 우리 회원들이 협회에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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