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공감] 할 수 있는 일

2025-04-17

나는 열네 살부터 춤을 췄다.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에 진학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며 받는 용돈을 모두 군것질에 쏟아부은 탓에 한 학기 만에 체구가 거의 두 배로 불어나 살을 뺄 겸 댄스학원을 등록했는데 꽤 비범한 곳이었다.

지하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살며 낮이고 밤이고 춤만 추는 십대 연습생들이 있는 연습실이었다. 그렇게 처음 춤을 배웠다. 나에게 재능이 있었던 건지, 열심히 하는 모습에 더 해보라고 부추긴 건지 어쩌다 보니 어린 나이에 준 연습생 대열에 끼게 되었다. 학교 다니며 방학에는 연습실에 살다시피 했고, 주말마다 시골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춤을 췄다. 내 학창 시절은 온통 춤이었다.

졸업 후 사회에 나와 하고 싶은 것은 오직 춤, 할 수 있는 것 또한 오직 춤이었다. 춤을 추기 위해서 돈을 벌었고, 돈을 벌기 위해서 또 춤을 췄다. 춤으로 벌 수 있는 돈은 생활하기에 녹록지 않았고 춤을 추기 위해 알바로 버는 돈도 내 생활을 감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또 경제 관념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럴듯한 도시 생활, 남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버는 만큼 써버리고 또 쓰기 위해 일을 더 해야만 했다. 부모님이 부족한 살림에도 지원해 주시려 노력했지만 내게는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 고향 서울 도시 한복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경력직 카페 알바와 시간제 댄스 강사일 뿐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무경력, 신입, 초짜였는데 그렇게 일해서 버는 돈을 나는 전부 배달앱, 카페, 입지 않을 옷과 쓰지 않을 소품에 소비하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시간들 모두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러다 20대 중반,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으로 귀촌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그 당시에 중요하지 않았다. 뭐든 내 손으로 직접 해나갈 수 있는 게 많은 환경을 내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시골에 와서는 짧은 기간 동안 참 많은 일을 해보고 있다. 춤도 추지만 서울에서 예술 활동을 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예술 활동 수업을 진행해보기도 했다. 농사일도 당연히 해봤다. 온갖 날씨의 영향을 다 받으면서 밭일을 한다는 게 고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흙과 풀을 만지는 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펜션 청소일도 해보고, 마을 어르신 집안일(?)을 거드는 일을 하며 시골 생활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우기도 했다. 농촌 청년 유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홍보 일도 해보고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주말 생활 교사로도 근무해 보았다.

처음 귀촌했던 지역을 떠나 연고가 없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한 후에는 사과 공장에 나가서 포장하는 일도 해보고, 닭 농장에서 달걀을 줍고 수세미로 닦는 일도 해봤다. 대체로 고되긴 하지만 내 마음만 가볍다면 감정소비는 필요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서울에서는 할 수 있음에도 일을 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농촌에 오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대개는 해 봤는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배워서 하면 그만이고, 젊으니까 할 수 있고, 시간이 있으면 할 수 있고, 일단 해보고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게 좋았다. 일을 마친 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빌딩 숲을 배회하는 것이 아닌, 진짜 숲 냄새와 밤하늘 별과 함께 쉴 수 있다는 것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다.

농촌에 와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사람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사람을 사귀기도, 끊어내기도 참 쉬웠는데 시골에 오니 그렇지 않다. 동네가 좁고 또 어느샌가 건너 건너 만나게 될 수 있으니 어떤 제안에 대한 승낙도 거절도 “잘”해야 한다. 꼭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고립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다. 도시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과 관계에 지쳐 고립되고 싶었는데 시골에 오니 내게 닿아있는 인연들이 소중하다. 귀하게 여기고 잘 이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또 나는 문화생활을 대단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틈만 나면 전시회와 영화를 보러 다니고 특이한 소품 숍이나 카페, 독립서점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시골에 오니 그런 것들이 없어도 내 삶은 충분했다. 손에 잡히는 많은 것들이 작업할 수 있는 재료가 되고, 꼭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주문해서 꼭꼭 씹어 삼키듯 읽는 것에 성취감마저 든다. 때때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놓치면 아쉽지만 그게 내 삶을 흔들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며칠 동안 계속되는 추위나 궂은 날씨가 내 생활에 영향을 준다.

평생 춤만 추며 살 줄 알았는데,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풀을 가꾸기도 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춤을 추지 않는 삶은 실패한 삶이라고 스스로 낙인찍어버렸던 과거와 달리 이제 나는 춤도 추고 풀도 키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앞으로 또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앞으로도 해보고 나서 결정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좀 자주 다치고 좀 자주 쉬어가야겠지만, 대신에 집에 돌아와 얼굴을 마주할 따뜻한 나의 사람과, 작은 고양이와 하얀 강아지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유현영 지역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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