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2025-04-18

‘어른 김장하’의 선한 영향력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는 역사적인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김장하 장학생’이었다는 사연도 새삼스럽게 되살아나면서, 그분의 삶이 재조명되고 영화가 재개봉되었다는 소식이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김장하 선생은 이미 TV 다큐멘터리와 영화, 그리고 책으로 관심을 모았고, 문형배 재판관의 발언도 2019년 국회 인사청문회 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김장하 바이러스’가 열풍처럼 번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수선하고 험상궂은 세상을 힘겹게 살면서 참다운 어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답답한 시대 상황이 엇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파면당한’ 그 사람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전혀 결이 다른 어른이기에 한층 울림이 큰 것이 아닐까. 닮고 싶은 어른은 보이지 않고 낡은 꼰대들의 잔소리만 난무하는 세상….

잘 알려진 대로, 김장하 선생은 194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 공부를 많이 못 하고, 한약방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주경야독해서 19세의 나이에 한약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약방을 개원하고는 질 좋은 약을 매우 저렴하게 처방해 입소문이 나고, 큰 돈을 벌어들인다.

그렇게 번 돈으로 고등학교를 설립해 국가에 기부했고, 천 명이 넘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문형배 재판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언론계, 차별 철폐나 여성인권, 환경보호 같은 사회 문제, 문화예술 교육 등 지역사회 발전을 전폭 지원했다. 많은 단체를 후원하면서도 감투를 쓰지 않았고, 모임에서도 가운데 자리에는 앉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번 돈이니,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서 사회에 다시 환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작 본인은 평생 자가용도 없이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젊은 시절에는 자기 집도 안 가질 정도로 근검절약했다. 오래된 옷을 입고, 해외여행 한 번 못했다고 한다. 사실, 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은 많다. 가령, 경주 최부자도 있고, 풍운아 채현국 선생도 있고, 노점상으로 평생 모은 돈을 대학교에 기탁한 할머니 등등…. 그런 분들 덕에 세상이 이만큼 이나마 굴러가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김장하 선생이 특히 존경받는 것은 그분의 생활철학과 겸손함, 베풀고도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어른다움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대통령의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고, 언론 인터뷰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선생의 미담은 너무도 많아서, 우리 같은 중생은 흉내 낼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닮고 싶어한다.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선순환, 이른바 ‘김장하 바이러스’의 힘이다.

나도 이런 어른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선생의 많은 가르침 중,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평범한 사람들의 중요성, 줬으면 그만이지…”라고 했던 세 가지 말씀을 되새기며, 실천해보려 애를 쓴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은 등산하는 자세를 말한 것인데, 인생도 거창한 욕심 부리지 말고 그렇게 착실하게 살면 된다는 교훈이다.

선생의 장학금으로 공부한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자 선생의 말씀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다.” 한 마디!

내가 가장 닮고 싶은 것은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자세다. 아무런 대가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마음, 50년이나 베풀며 살았어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올곧은 자세, 선생은 장학생들에게 “나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대신 사회에 갚으라”고 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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