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개월간 감감무소식이었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뒤늦게 재시동을 걸었다. 21일 열린 제3차 연금특위 전체회의다. 지난 3월 특위 구성 이후로는 세 번째고,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로는 첫 번째 회의다.
모처럼 회의가 열렸지만, 내용은 별로 대단한 게 없었다. 안건은 민간자문위원회 구성의 건이었다. 이날 구체적으로 자문위원을 선정한 것도 아니었다. 세부 사항은 위원장과 여야 간사에게 맡기기로 하고 3분 만에 회의를 끝냈다.
넉 달 만에 연금특위 재개했지만
3분간 회의에 알맹이 없이 종료
청년 세대 목소리 끝내 외면하나
아직도 할 일은 많이 남았는데 시간이 너무 없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물고 길은 멀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다. 지난 3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특위 활동기한은 올해 말까지다. 물론 여야 합의가 있으면 기간 연장은 가능하다. 하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연금개혁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과제지만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일단 올해를 넘기면 내년에 다시 연금개혁 논의가 힘을 얻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연금특위의 구성을 보면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위원 13명 중 여당은 여섯 명, 야당은 일곱 명이다. 얼핏 여소야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비교섭단체 몫으로 특위에 배정된 전종덕 진보당 의원이 있어서다.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 순위 11번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형식적으론 야당 의원이지만 사실상 범여권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특위 위원들의 면면을 봐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미래의 연금 고갈 위기에 대한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 가운데 30대는 단 한 명, 모경종(36) 의원뿐이다. 지난 3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세대의 불안감을 대변했던 민주당 의원 세 명(이소영·장철민·전용기)은 모두 배제됐다. 반면에 국민의힘이 특위 위원 여섯 명 중 절반인 세 명을 30대로 배치한 건 환영할 만하다. 지난 3월 공동 기자회견에도 참여했던 김용태(35)·김재섭(38)·우재준(37) 의원이다.
민주당 소속 위원 중에는 보좌진 갑질 논란으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서 낙마한 강선우 의원도 있다. 강 의원은 지난 4월 회의에서 “(장래에) 기금이 고갈돼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건 사실과 굉장히 다르다”고 강변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책임한 얘기다. 언젠가 연금 기금이 완전히 고갈되면 그 뒤에는 무슨 돈으로 연금을 지급할 것인가. 세금과 보험료를 대폭 올리거나, 정부가 대규모 적자 국채를 찍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부담은 누가 떠안을 것인가. 현재의 어린이·청소년 세대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연금개혁안은 성과도 있었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은 연금 기금의 고갈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한다. 반대로 소득대체율 인상은 기금의 고갈 속도를 빠르게 하는 요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40년 뒤인 2065년 완전히 고갈될 전망이다. 올해 25세인 2000년생이 앞으로 65세가 되면 연금 기금이 한 푼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금개혁안 통과 이전에 비하면 기금 고갈 시점을 8년 늦추긴 했다. 그렇지만 2065년 이후에는 뾰족한 대책이 안 보인다.
미래 세대는 얼마나 많은 부담을 떠안게 될까. 예산정책처는 국가가 연금 가입자에게 주기로 약속은 했지만 실제로는 모자란 돈(미적립부채)이 얼마인지 추산한 결과도 제시했다. 만일 현행 제도에 변함이 없다면 2095년까지 1820조원이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앞으로 연금 가입자에게 줘야 할 돈을 지난해 말 기준 화폐 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다.
추가적인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에 미래의 연금 적자는 계속 불어난다. 연금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시급하다. 인구·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연금 지급액을 조정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24개국이 자동조정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여년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에 이 제도를 도입해 연금 재정 안정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2015년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얘기다. 이 말을 연금에 적용하면 ‘재원 없는 연금은 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권이 청년 세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까운 시간을 이대로 흘려보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