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바다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바다에서 국가 발전의 동력을 확보하고 인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자 해양과학기술 분야 연구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써왔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주요 해양 강국을 중심으로 5대양·심해저·극지를 아우르는 해양조사와 자원개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나라마다 대양 연구선과 유·무인 잠수정 등 해양연구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며 자국 해양력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11척, 영국은 8척, 일본도 8척 연구선을 보유·운영한다.
중국은 최근 연구선 탄수오 3호를 활용해 극지 해저에 탐사 잠수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중국은 대양조사연구선 썅양홍 5·7호, 대양 1·2호 등 10척의 대양연구선과 쇄빙연구선 쉐룽호, 심해 유인잠수정 자우룽호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탐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연구선 온누리호(총 톤 수 1370톤, 승선 인원 41명, 항해속력 12.5노트)를 취항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양을 무대로 해양과학기술 탐사 임무를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대양 전용 연구선이 없어 외국에 의존해 왔는데 온누리호 취항으로 선진국과 대양 탐사 경쟁이 가능해졌다.
이후 2016년 취항한 5900톤급 이사부호를 이용해 △기후변화 대응 및 해양환경보전 연구 △실시간 해양환경 예측·예보 시스템 구축 △심해 광물자원 탐사 등을 수행했다. 이때부터 선진 해양연구기관과 국제 공동연구도 본격화했다.
취항 당시 온누리호는 해양 선진국 대양 탐사용 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우리나라 연안과 지역해는 물론 남극까지 누비며 깊이 있는 해양조사활동을 벌였다. 다중 음향측심기, 해상중력계, 다중채널 탄성파 지질탐사장비 등 첨단장비를 탑재해 남중국 해역과 인도양까지 나아가 해양자료를 수집했다. 태평양 공해상의 심해 광구인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을 비롯해 매년 태평양 심해저 자원을 탐사했고, 국제공동 해양조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온누리호는 1994년 우리나라가 태평양 C-C해역에서 15만㎢ 크기의 광구를 UN에 등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0년에는 태평양 심해열수구의 고온에서 서식하는 초고온성 고세균 '써모코커스 온누리누스 NA1'을 발견하는 등 심해저 탐사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온누리호 해양탐사 활동을 토대로 우리나라는 해양연구 능력을 향상했고 국제 수준 성과도 창출했다.
이처럼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해양탐사를 주도했던 1세대 연구선 온누리호는 2025년 현재 선령이 33년을 초과했다. 선박 노후화로 인한 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안전문제로 인해 장기간 연구현장 투입은 불가능한 상태다.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극심한 해양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면 연구 탐사 범위를 먼 바다로까지 확대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반도 주변 해역 탐사에만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는 지금 해양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친환경·디지털 기술 혁신, 해양신산업 분야에 인공지능(AI) 접목 활용, 첨단 연구인프라 확충 등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해양 격동의 시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해양과학기술 발전 전략 수립과 지원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온누리호를 대체할 수 있는, 시간·공간적으로 정밀하고 입체·안정적으로 해양 정보를 확보할 첨단 연구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최첨단 탐사장비인 정밀 위치유지시스템, 예인체(수중 글라이더, 심해 잠수정 등) 수중위치추적시스템, 정밀 위성 네트워크 및 육상기지 원격제어시스템 등을 탑재한 지능형 연구선(Smart Research Vessel)을 확보할 때다.
우리나라가 최신 지능형 연구선을 취항하면 주변해역을 넘어 대양, 극지 및 심해저 등 극한 환경의 해양현장에서 보다 원활하게 시료 채취, 데이터 확보, 해저 탐사 등을 수행할 수 있다. 그 결과는 해양탐사 경쟁력을 높이고, 해양 선진국과의 해양 영토 확보 경쟁에서 우위로 이어질 것이다.
국제 해양디지털화 추세에 발맞춰 국가적 공동자산인 연구선을 공공과 민간이 공동 활용한다면 다양한 시너지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수집 데이터를 '해양과학 데이터 오픈 플랫폼'으로 개방해 공유하면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고품질 해양데이터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국제공동연구에서 활용 가치도 크다. 전지구적 해양 환경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제공동연구가 필수이고 이때 지능형 연구선을 활용하면 국제공동 연구와 탐사를 주도할 수 있다. 새로운 글로벌 협력 과제 발굴이나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등 국제적 협력과 해법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해양과학기술 경쟁력은 해양연구 인프라 확보에 달렸고, 인프라의 핵심은 바로 '연구선'이다.
우리나라 해양과학 연구자들이 탐사 성능과 영역이 대폭 향상된 지능형 연구선을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 국제사회 일원으로 글로벌 협력을 주도하며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를 돌파할 열쇠를 바다에서 찾아보자.
이희승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hslee@kiost.ac.kr
〈필자〉이희승 원장은 1965년생으로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기화학 석·박사를 받았다. 2000년 한국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 입원해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장, KIOST스쿨장, 부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 5월 제12대 원장에 취임했다. KIOST에서 해양생물자원 연구로 약 120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40여건의 특허 등록을 바탕으로 기술이전 등의 성과를 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한국해양바이오학회장, 부산시 과학기술진흥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대외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