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약 150㎞ 떨어진 발트해안의 작은 마을 포르스마르크에 비상이 걸렸다. 이 지역에 건설된 원자력발전소에서 높은 수준의 방사선 누출을 알리는 경보가 울린 것이다. 발전소 사고가 우려됐지만 조사 결과 방사성물질의 근원지는 이 마을에서 1000㎞ 이상 떨어진 우크라이나(옛 소련)로 밝혀졌다. 그해 4월 26일 발생한 역대 최악의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 참사는 이렇게 소련 밖으로 알려지게 됐다.
소련이 은폐하려 했던 체르노빌 사고를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포르스마르크는 스웨덴 최대 원전이 위치한 곳이다. 1980년부터 가동된 3기의 원자로가 스웨덴 전력 수요의 14%를 책임진다. 포르스마르크 원전은 스웨덴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원전이기도 하다. 스웨덴 정부는 1980년 국민투표를 거쳐 ‘탈원전’ 정책으로 돌아서기 시작했고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기조를 더욱 굳혔다. 정부가 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해 친(親)원전 정책으로 되돌아선 것은 2022년의 일이다. 스웨덴은 2045년까지 최소 10기의 원자로를 지을 계획이다.
최근 포르스마르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의 골칫거리인 사용후핵연료 폐기물을 영구 처리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이곳에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스웨덴 정부의 승인을 얻은 방사성폐기물 관리 회사 SKB는 최근 암반 지하 500m 깊이에 길이 60㎞의 터널을 포르스마르크 원전 인근에 짓기 시작했다. 핵폐기물 1만 2000톤을 10만 년간 매립할 수 있는 규모다. 완공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예정이지만 2030년대 후반부터는 5m 구리 캡슐에 담긴 사용후핵연료 폐기물 매립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포르스마르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착공된 고준위 방폐장이다. 가장 먼저 완공된 핀란드 온칼로의 고준위 방폐장은 이르면 올해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등 세계 주요 원전 운영국들도 지속 가능한 원전 생태계를 위해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10년 가까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언제쯤 통과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