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해군 잠수함, 60일간 대서양 항해
‘고립무원’ 장기 비행 우주선과 환경 비슷
승조원 대상으로 체내 물질 ‘코르티솔’ 검사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과다 분비되면 부작용
향후 화성 등 지구에서 먼 천체 향할 준비
길이가 100m에 육박한 포르투갈 해군 소속 잠수함 한 척이 대서양을 향해 출항 준비를 한다. 승조원들이 잠수함 위에 널린 밧줄을 정리하며 잠항을 위한 마지막 뒷정리를 마치자 잠수함은 곧바로 바닷속을 향해 모습을 감춘다. 승조원들은 정해진 훈련을 하고 난 뒤에는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식사를 즐기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런데 항해 중간에 이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승조원들에게 다가와 머리카락 일부를 가위로 잘라간다. 승조원들이 뱉은 침을 기다란 시험관에 담기도 한다. 다른 항해 때에는 없던 일이다.
이 같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지난주 유럽우주국(ESA)의 공식 설명자료와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이 잠수함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잠수함 환경은 우주선과 ‘판박이’
지난 17일(현지시간) ESA와 포르투갈 우주국 및 해군은 과학 연구 목적의 특별 임무인 ‘서브시(SubSe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임무 중인 잠수함 승조원을 대상으로 한 총 60일간의 신체 조사·관찰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잠수함은 발표 전날 포르투갈 해군 기지로 복귀했다.
서브시 프로젝트의 목적은 우주를 장기간 비행하는 인간이 신체적으로 겪을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ESA의 의뢰를 받은 포르투갈 리스본대와 독일 뮌헨대, 이탈리아 플로렌스대 소속 연구진은 바닷속을 항해하는 잠수함을 비행 중인 우주선으로 간주하는 것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잠수함은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인 데다 장기간 바깥출입이 금지된 가운데 항해한다. 바닷속에서는 잠수함 바깥의 빛과 소리도 함내로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연구진에게 잠수함은 우주에 가지 않고도 우주선에 오랫동안 탑승한 사람의 반응을 가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조사와 관찰은 승무원 가운데 연구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뜻을 보인 승조원 25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연구진이 특히 주목한 것은 승조원들 몸속의 ‘코르티솔’ 분비였다. 코르티솔은 콩팥에 있는 부신피질이라는 부위에서 분비되는 인체 호르몬이다.
코르티솔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생성된다. 혈당을 높이고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의 대사를 돕는다. 스트레스를 이길 만한 힘을 준다는 뜻이다. 구덩이에 바퀴가 빠지면 운전자는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 엔진 구동력을 높이는데, 가속페달 역할을 코르티솔이 하는 셈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분비되면 체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잠수함에 탄 연구진이 항해 도중 승조원들의 머리카락을 자른 이유도 코르티솔의 증감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몸에서 나오는 코르티솔은 머리카락에 쌓인다. 코르티솔은 침에도 섞여 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항해 중 승조원들의 타액 수거에도 나섰다. 연구진은 승조원들의 코르티솔 자료를 정밀 분석하는 데 곧바로 착수할 예정이다.
스트레스는 화성 진출 ‘걸림돌’
연구진은 왜 이런 조사를 했을까. 지구와 다른 행성 간의 먼 거리 때문이다. 인류의 정착지 후보이면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화성까지는 우주선으로 최소 6개월이 걸려야 도착한다. 화성으로 향하는 동안 우주비행사와 승객은 꼼짝없이 우주선 안에 갇혀서 지내야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다.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면 우주선 안에서나 화성 도착 직후에 정상 생활을 하기 어렵다. 우울감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거나 받은 스트레스를 빨리 해소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선과 비슷한 환경인 잠수함 안에서 시행한 이번 연구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면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더해지는 셈이다. 현재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는 2050년까지 100만명을 화성으로 보내 자족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다음달쯤 7차 시험발사가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인류 최대 로켓 ‘스타십’도 화성 이주라는 목표를 위해 개발 중이다. 스타십은 한 번에 사람 100명을 태울 수 있다.
ESA는 “이번 연구는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 가진 회복력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분석 결과는 지구에 있는 고립된 관측소나 군 기지, 채굴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