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차(車)들을 위한 나라

2025-10-21

좌우를 살핀다, 건널까 말까 우물쭈물한다. 지체하는 순간 7-8m 전방에서 차가 등장한다. 저 차만 보내고 건너자 다짐한다. 근데 낭패다. 앞 차량을 뒤따라 어중간한 간격으로 다른 차들이 이어진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보행자는 다시 한참을 눈치보며 안전한 타이밍을 기다린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의 풍경이다.

아주 가끔 인도 쪽 보행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속도를 줄여 멈추는 차가 있다. 이런 운전자는 서른 대 중에 한 대 정도 될까. 드디어 보행자는 확실한 사인을 받고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는데 이런 배려가 고마웠는지 운전자를 향해 목례를 하기도 한다.

차가 생활의 중심이고 과장해서 말하면 무법천지인 소도시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22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었지만 법이 일상의 습관을 개선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만 차량이 정지하면 됐지만 현행법상 횡단보도에 진입하지 않고 ‘통행을 하려는 때’에도 차량은 멈춰야 한다. 즉 대부분의 횡단보도 앞에서 차는 일시정시를 하고, 보행자를 우선해야 한다.

결국 기다리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모든 차량은 법을 위반한 셈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의식하거나 지키려는 운전자는 얼마나 될까.

자동차 중심의 생활권에서 마주하는 또 하나의 비극은 바로 로드킬이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그 짧은 거리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동물의 사체를 마주친다. 고라니, 고양이, 너구리, 개, 심어 까마귀와 뱀까지. 필자가 도로 위에서 발견한 동물들이다.

필자 역시 전조등에 의지해 시골길을 달리다 고양이를 칠 뻔한 아찔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대낮에 앞서가던 차가 고라니를 들이받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차에 부딪힌 고라니가 몇 초간 경련을 일으키다 도로 위에 고꾸라지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즉사한 동물의 사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이를 먹으려는 까마귀나 까치가 모여들고 차량들이 이를 피하느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멧돼지처럼 덩치 큰 동물과의 충돌은 운전자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대형 사고가 되기도 한다.

연간 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의 수가 9만이라고 하는데 비신고건수와 소형동물을 합치면 대략 20만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의 추산도 있다. 이는 웬만한 중소 도시의 인구수와 맞먹는 수의 생명이 매년 도로 위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로드킬은 고속도로보다 국도와 지방도에서, 특히 수도권 왕래가 잦은 강원과 충청권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동물의 번식기인 봄, 월동을 준비하는 가을에 사고가 집중되는데, 공교롭게도 인간의 여행철과 겹친다. 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태통로나 유도울타리 같은 물리적 시설은 비용 부담이 커서 전국의 도로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야생동물 등장을 알리는 경보시스템이나 로드킬 다발구간 정보를 내비게이션과 연동하는 기술도 논의되고 있지만, 전면적인 도입은 더디기만 하다.

자동차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 속도 기계를 버릴 수 없다면, 인간과 동물의 안전을 고려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들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차 중심성은 이미 뿌리 깊어 쉽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전민정 부안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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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로드킬 #교통안전 #도로교통법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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