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고독하고 어렵다”

2024-11-25

전국 단위 ‘법원장 추천제’로 선임된 첫 춘천법원장

그동안 사회적 관심과 파장이 컸던 사건 다수 재판

제주 출신이라는 점을 늘 자랑스러워 하는 ‘제주인’

부상준 춘천지방법원장(54)은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 1999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그 후 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의정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춘천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23년 2월 전국 단위로 시행된 ‘법원장 추천제’에 의해 임명된 첫 춘천지방법원장이다.

▲평범했던 어린 시절

부 법원장은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부부 교사였던 부모님 아래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산과 들, 바닷가에서 놀며 자라던 그는 제주시내로 전근 가는 부모님을 따라 고향을 떠나 제주시 광양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부 법원장은 “시골에서 생활하다가 도시로 이주하게 되면서 도시의 화려함과 처음 느끼는 문물 때문에 문화적 충격이 상당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또 “제주제일중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전체 석차가 나오는 성적표를 받게 되면서 경쟁심이 강한 성격 탓에 시험기간에는 도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으나 평소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자신을 평가했다.

▲법률가의 꿈을 꾸다

부 법원장이 법률가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제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다.

그는 “고등학생 때 TV에서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법률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똑같은 사안을 두고 관점을 달리하는 원고와 피고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며 법학이라는 학문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부 법원장은 고 2 겨울방학 때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을 다니게 됐는데 그 곳에 비치돼 있던 고시 잡지에서 사법시험 합격생들의 수기를 읽으며 법률가로서의 삶을 꿈꾸게 됐고, 자연스럽게 법과대학에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고교를 졸업하면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부 법원장은 “고려대는 아버지가 영문과를 졸업한 대학이라서 친숙했고,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서 지원하게 됐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87년은 민주화 요구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문제로 대학은 시위가 이어졌고, 시험 거부 등으로 학내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할 때였다.

“대학 4학년이 돼서야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히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그는 대학원 재학 중인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판사로 임관했을 때의 소감

부 법원장은 “판사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중요한 직역(職役)임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판사로 임용돼 사건 기록을 접하고 법정에서 당사자를 만나게 되는 쉬운 사건이 없었고, 선뜻 결론을 내리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선배 법관들과 한 재판부에 함께 근무하면서 선배들이 사건과 당사자를 대하는 자세와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판결문에 담는 방법도 배워 나가면서 점차 업무에 익숙해졌고,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부 법원장은 “아직도 재판 결론을 내리는 일은 늘 고독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조심스러워 했다.

▲고향 제주서 근무하다

부 법원장은 2011년 부장판사로 발령받으면서 제주지방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여 년 만에 마흔이 넘어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기뻤고, 주위의 친지들도 자랑스러워했지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는 판사로 고향에서 근무하는 것이 불편한 점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한번은 민사사건 당사자들을 불러놓고 조정 절차를 진행하면서 원고측에게 양보를 권유해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원고가 고교 동창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내가 혹시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부 법원장은 제주 근무 당시 제주의 언어·역사·문화를 함께 공부하는 ‘영주문화회’ 회장을 맡아 육지에서 온 판사들이 제주와 제주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도 했다.

그는 “강사들을 모셔서 제주 방언을 배우고, 설문대할망을 비롯한 제주의 신화, 탐라국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제주 역사를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주 근무 당시 오름 지정 처분 무효 소송을 진행하면서 화산 분출의 근거가 되는 분화구와 화산석 ‘송이’의 존재 여부 등 과학적 방법을 토대로 사건을 심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사회적 주목을 받았던 재판

부 법원장이 담당했던 재판 중에는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사건은 그가 서울고등법원 배석 판사로 근무할 때 주심 판사를 맡았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이었다.

삼성그룹의 가업 승계와 관련된 사건인지라 전환사채 발행이 무효가 되면 삼성그룹 후계자 승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 때마다 대법정이 기자들로 가득찼고, 재판장이나 검사, 변호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서 상당한 압박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부 법원장이 맡았던 재판 중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도 있다.

처음에는 단순 도박사건이었다가 나중에는 법조비리 사건의 단초가 된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 정운호 원정 도박사건이다.

그는 또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때 ‘효성그룹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장남과 차남 간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맡기도 했다.

▲법관으로 남은 기간 목표는

부 법원장은 “사법부는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한 생명, 신체, 재산, 명예 등에 관한 기본적 인권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보루의 역할을 하라는 명령을 국민으로부터 받은 국가기관”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는 이어 “누구도 강제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으며 법관만이 재판을 통해 국민들의 빼앗긴 권리를 찾아주고,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법관은 자신이 다루고 싶은 사건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사건을 심리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재판 한 건 한 건에 재판 당사자나 피고인, 피해자들의 인생이 걸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면서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각오”라고 말했다.

▲고향 제주의 의미

부 원장은 “제주는 저를 만든 곳이고, 제가 인생을 시작한 곳이며 긴 여행을 마치면 돌아가야 할 영원한 안식처”라고 고향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저 스스로 제주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잊지 않으려 하고 있고, 제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 한다”며 제주인으로서의 긍지를 내비쳤다.

약사인 부인 윤하영씨도 제주 출신이다. 부 법원장이 대한법률구조공단 제주지부에서 법무관으로 근무할 당시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으며 자녀는 딸 한 명이 있다.

김승종 기자 kimsj31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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