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범하다’는 한자 ‘犯(범할 범)’에서 유래하였으며 여러 뜻을 갖고 있다. 국어사전은 ①법률·도덕·규칙 따위를 어기다②잘못을 저지르다③들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나 지역 따위를 넘어들어가다④정조를 빼앗다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자 ‘犯’은 ‘犭(개·사슴 록)+卩((=㔾:병부(兵符) 절)’로 이루어진 글자인데 ‘犭’은 주로 ‘사나운 개’의 의미로 쓰이는 글자이며, ‘㔾’은 ‘군사적·공격적’ 행동을 표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두 글자의 합으로 이루어진 ‘犯’은 ‘사나운 개처럼 덤비다’가 원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막 대놓고 공격한다’는 뜻을 가진 글자인 것이다.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는 “속이지 말고 막 대놓고 공격하라”고 답했다. 임금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눈치 보지 말고 바른말을 하라는 뜻에서 ‘물기(勿欺:속이지 마라)’와 ‘범지(犯之:그를 범하라)’를 아울러 말한 것이다. 범지 즉 범하다의 반대말은 아부(阿附)이고, 아부는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알랑거리고 빌붙는다는 뜻이다. 신하가 임금을 속이고, 범하기는커녕 아부를 일삼으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비춰 볼 때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