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한국행위예술가협회×기린미술관, 퍼포먼스 난장이 펼쳐지다-‘한 평 속에 내가 있다’

2025-04-21

 “한 평이면 충분했다.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세상을 뒤집고, 고백하고, 저항했다.”

 지난 19일 전주 기린미술관은 낮 3시가 되자마자 순식간에 살아 움직이는 무대가 되었다. 한국행위예술가협회와 기린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제2회 퍼포먼스 설치 드로잉 전’이 시작된 것이다. 전시의 주제는 ‘한 평 속에 내가 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과 내면을 압축시킨 퍼포먼스들은 그 좁은 틀 안에서 오히려 팽창하는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했다.

 예술과 삶 속에서 버티며 가진 것을 다 쏟아내고 토해내도 남는 것은 허무함과 공허함뿐이었던 작가의 길. 김용수 작가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인 긴 머리카락을 잘라 붓으로 사용했다. 그 시간은 숭고했다. 작가가 끝내 고결, 충실, 인내, 맑은 마음을 담은 ‘정조(貞操)-없더이다’를 완성하자 따뜻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성백 작가는 바닥에 깔린 광목 천위에 먹물을 이용해 깊고 넓은 나무뿌리를 드로잉한 ‘우리의 뿌리는 더 깊고 넓다’를 완성했다. 심홍재 작가는 벽을 허물고 서로 소통하며 평화와 안녕을 염원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오광해 작가의 ‘1초 드로잉’은 국수를 매개로 한 퍼포먼스였다. 뜯어진 국수 봉지에서 뿌려진 면발은 바닥에 원을 그렸고, 그 안에 평화의 심볼이 완성됐다. 한 줄기의 국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무겁고 또 명료했다.

 임택준 ‘검은 나무의 고백’은 산불로 탄 숲의 영혼을 위한 의식이었다. 마임이스트와의 콜라보는 장면마다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꿈틀거림, 생명력의 재생을 표현했다. 관객들은 숨죽여 지켜봤고, 무언의 공감이 전시장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조성진 작가는 자신의 몸을 한 평의 공간에 가둔 뒤 색색의 테이핑으로 그 흔적을 기록한 ‘한 평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시간과 존재, 그 모든 것을 가둬둔 공간에서 빠져나온 작가의 모습은 하나의 시위였다.

 변영환의 ‘쩐파티’는 이날 행사의 피날레에 걸맞은 강렬함을 남겼다. 바닥에 동전이 뿌려지고, 지폐가 공중을 날았다. 자본주의의 천박한 본질을 조롱하는 블랙코미디를 관람객들은 지켜보았다.

 올해 행사에는 지난해와 달리 기린미술관 야외 마당까지 퍼포먼스의 무대로 활용되며 보다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윤해경 작가의 ‘혼길’과 이효립 작가의 ‘빛으로 구원-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가 건물 밖에서 이뤄지면서 오가는 시민의 발길을 붙잡았다.

 또한 작년과 올해의 영상 기록이 상영되며 퍼포먼스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이해를 확장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퍼포먼스 실연의 결과물은 5월 15일까지 기린미술관에 방문하면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이날에는 한국행위예술가협회와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향후 국제 창작 워크숍과 공동 기획을 약속했다. 참여 작가들은 전시 종료 후, 직접 제작한 친필 작품을 기린미술관에 기증하며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기린미술관은 이 감각적인 행위예술제를 내년부터는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맞춰 개최해 더 많은 시민과 관광객에게 다가갈 계획이다.

 이날 행위예술가들은 전시 제목처럼, 예술가들은 한 평에 자신을 온전히 던졌다. 그 안엔 시와 분노, 연대와 고백, 그리고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들어 있었다. 한 평의 예술이 이렇게 넓고 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전주는 또 한 번 예술의 도시로서 새 얼굴을 드러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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