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한전 상대 첫 ‘기후배상’ 소송···"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

2025-08-12

“사과 썩고 폭우에 하우스 잠겨…더 이상 피해 감당 어려워”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에 1인당 ‘500만2035원’ 손배 청구

경남 함양에서 15년째 사과 농사를 짓는 마용운씨는 2㏊(약 6000평)에 달하는 사과밭이 이제 짐처럼 느껴진다. 5월 초 피던 사과꽃이 기온 상승으로 최근에는 4월 초에 피고,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냉해도 크게 발생한다. 봄을 견뎌낸 사과도 여름 폭우에 떨어져나가 수확량이 줄었다. 마씨는 12일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농민”이라며 “더 이상은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생업을 지키기 어려워진 농민 6명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인 한국전력과 산하 5개 발전공기업을 상대로 기후위기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폭염과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로 발생한 농작물 피해는 기후위기를 부른 기업이 물어내야 한다는 취지다. 국내 농업 분야의 기후 피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첫 민사소송이다. 해외에서는 페루 농업인이 독일 에너지 기업 RWE를 상대로 낸 소송, 네덜란드에서 환경단체가 석유기업 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등의 사례가 있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11~2022년 한전과 발전사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국내 전체 배출량의 23~29%를 차지한다. 한전과 발전사는 전체 발전량의 95%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석탄발전 비중만 약 72%에 달한다.

이번 소송에서 농민 1인당 청구액은 500만2035원이다. 500만원은 재산상 손해의 일부이고, 2035원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위자료로 책정했다. 기후솔루션은 “현 정부의 2040년 탈석탄 목표보다 앞선 2035년까지 석탄발전 퇴출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농민은 기후위기를 최일선에서 마주하는 당사자다. 한반도의 최근 30년간(1991~2020년) 평균기온은 1912~1940년 평균과 비교해 1.6도 높아졌고, 강수량은 135.4㎜ 증가했다. 충남 당진에서 35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황성열씨는 “농촌에서 풍년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지 5년이 됐다”며 “병충해와 폭우, 폭염 피해로 벼 수확량이 줄고 품질이 떨어져 생계가 위태롭다”고 말했다.

경기 이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하는 송기봉씨는 기후변화로 복숭아순나방이 창궐해 나무를 베어냈고,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윤순자씨는 온난화로 ‘제주 감귤’ 경쟁력이 사라져 손해를 봤다. 경남 산청 이종혁씨의 딸기 하우스는 폭우로 물에 잠겼다.

이번 소송을 진행하는 임두리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계기로 농업인들이 기후 피해를 보는 현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한전과 자회사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이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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