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기관 ‘진실규명 권고’ 절반만 따랐다

2025-05-25

진실화해위 2기 조사 마무리

1340건 중 690건… 이행률 51%

국방부 35%·경찰청 46%로 저조

배정 사건 10% 기간 만료로 중지

전공노 “일부는 사유 없이 보류돼”

국가사과 권고 이행률 15% 불과

“피해자 구제 법적장치 강화해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2기가 26일로 조사를 종료하지만 기간 만료로 진실규명 기회를 놓친 사건이 2000건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사건도 정부 기관들의 소극적 이행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과거와의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설립 취지와는 거리가 먼 미완의 과거사 정리로 마무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진실화해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부터 시작된 2기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지난 21일까지 전체 배정 사건 2만924건 중 조사기간 만료로 조사중지된 사건이 2116건(10.1%)에 달했다. 진실규명 결정은 1만1908건(56.9%)에 그쳤고, 불능·각하·취하·이송된 사건도 6900건(33.0%)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실화해위지부는 조사중지된 사건 중 368건은 조사결과보고서가 작성돼 상임위원에게 보고됐음에도 특별한 사유 없이 보류됐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묻지마 보류’로, 사건 현장 목격이나 시신수습 등 구체적 진술이 확보됐음에도 제적등본상 사망 일자가 다르다는 형식적 이유로 진실규명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진실규명 결정 이후 정부 기관들의 권고사항 이행률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총 1340건의 권고사항 중 690건만 이행돼 이행률은 51%에 불과하다.

특히 직접적 가해기관으로 지목된 국방부는 181건 중 64건(35%), 경찰청은 184건 중 84건(46%)만 이행해 전체 평균(51%)을 크게 밑돌았다. 반면 인사혁신처(100%)와 해양수산부(100%), 교육부(83%) 등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행률을 보였다.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핵심 권고사항의 이행률은 극히 저조했다. 국가사과는 140건 중 21건(15.0%), 피해회복은 123건 중 4건(3.3%), 유해발굴은 89건 중 16건(18.0%)만 이행됐다. 유해안치는 88건 중 단 한 건도 이행되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려도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재심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수십 년 지난 사건이라 법원에서 소멸시효 경과로 기각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오수미 삼청교육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는 “아버지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면서 우리 삼남매는 고아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며 “진실화해위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2년째 재판 중인데 1심 판결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진실화해위가 유명무실하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오 대표는 “최소 1년 넘게 걸리는 재판 기간 동안 세상을 떠나는 피해자들도 많다”며 “국가가 거의 모든 사건에 항소해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실화해위는 11월 조사보고서 작성을 포함한 전체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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