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 큐레이터가 바다의 청소부로 변신했다. 지난 7년간 제주 앞바다에서 모두 123t의 쓰레기를 수거한 변수빈(35) ‘디프다 제주’ 대표가 주인공. 변 대표는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지난 4일 열린 ‘플라스틱 생산 감축’ 포럼에서 ‘의료폐기물 표적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지난 1~5월 제주 바다 총 19개소에서 73회에 걸쳐 20t 분량의 해양 쓰레기를 수거했다고 한다. 이 중엔 바늘이 달린 주사기 54개와 약병 260개, 알약 포장재 등 기타 의약품 155개도 있었다. 가정집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인슐린 또는 불법 약물 주사기, 영양제, 동물 의약품 등 종류도 다양했다. 변 대표는 “현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와 닿았던 쓰레기는 의료 폐기물”이라며 “선크림 몇 방울도 산호초를 위협하는데 의료 폐기물이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상상이 안 갈 정도”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의료 폐기물은 지정된 배출장소에서 전용 용기에 담아 소독 처리 후 소각해야 한다. 폐의약품도 보건소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수거해 지정된 장소에서 소각 처리해야 한다. 일반 쓰레기로 처리할 경우 감염병 전염이나 생태계 교란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용 의약품을 쓰레기통· 하수구·변기에 버리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바다로까지 흘러간다는 게 변 대표 설명이다. 변 대표는 “해양폐기물의 70%는 육지에서 나온 것”이라며 “강, 하천 등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경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해류인 구로시오 중간에 위치해 해류를 타고 이동한 다른 나라의 쓰레기도 자주 발견된다. 변 대표는 포장재 등을 통해 쓰레기의 원산지를 추측한다. 대부분 중국산이지만 ‘북한 수액팩’을 주운 적도 있다고 한다. 변 대표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한국에서 나온 쓰레기가 일본 앞바다로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양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제 공동 모니터링 및 데이터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 대표가 처음부터 해양 생태계 복원을 위해 제주 바닷속 청소에 나선 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쉬는 날이면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제주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였다. 십여년 전만 해도 제주 바다는 비교적 깨끗했지만, 변 대표가 다이빙을 거듭할수록 바다 깊은 곳에 쓰레기가 쌓이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변 대표는 “처음엔 좋아하는 놀이터를 깨끗이 치워보자는 마음에서 2018년 지인들과 ‘디프다 제주’를 설립해 청소에 나섰다”고 했다.
활동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변 대표는 큐레이터 일을 뒤로하고 바다 쓰레기 수거에 전념했다. 여름엔 수온이 32℃까지 올라 숨이 차올랐고, 겨울엔 해류를 타고 밀려온 쓰레기가 끝도 없었다. 2023년 12월 제주 고산리에서 다이빙했을 땐 2t가량 쓰레기를 주웠고, 페트병 2160개가 나왔다. 변 대표는 “쓰레기가 해변의 자갈보다도 많아 보였다”고 전했다.

변 대표와 봉사자들은 연간 160번 가까이 바다에 나가 쓰레기를 줍고 있다. 늘어나는 쓰레기만큼 해양 오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디프다 제주가 진행하는 쓰레기 수거 프로젝트인 ‘봉그깅’의 회원은 360명을 넘어섰다. 봉그깅은 ‘줍다’의 제주 방언인 ‘봉그다’와 ‘플로깅(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합친 말이다. 최근엔 제주 해녀들도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변 대표는 “해녀가 쓰레기가 아닌 전복을 주웠던 과거의 바다는 마치 숲처럼 푸르렀다고 한다”며 “삭막해진 바다를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건 개인의 노력을 넘어 기업·정부·국제사회 등 모두의 연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