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시즌 2의 첫방송을 시작한 JTBC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해’)는 5개월째 순조롭게 순항 중이다. <냉부해>는 게스트의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셰프들이 15분 동안 요리를 만들어 대결하는 프로그램으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냉부해>의 흥행은 ‘셰프’라는 직업에서 요리연구가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대중적 인지도와 전문성을 높였다. 냉부해가 낳은 스타 셰프 최현석, 이연복, 정호영, 이원일 등은 여전히 방송가에서 대활약 중이며, 이렇게 불붙은 요리와 셰프에 대한 관심이 2024년 돌풍을 일으킨 <흑백요리사>(넷플릭스, 2024)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를 등에 업고 돌아온 <냉부해>, 10주년 방송이자 5년만의 리부트인 만큼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름대로 쇄신을 꾀하려한 듯 보인다. 냉부해 시즌 2의 초반은 <흑백요리사>를 통해 떠오른 신예들과 기존의 스타 셰프들의 대결구도를 형성했다. 새로 온 셰프에게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고, 게스트의 냉장고 소개 비중을 줄였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냉부해의 감수성은 10년 전에 멈춰 있다. 여전히 불균형한 성비와, 외국인 셰프로는 ‘백인만’ 등장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요리는 여성-모성의 영역으로, 전문성이나 노동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운전하는 여성들이 “밥하고 나옴”이라는 말을 붙이고 다니던 때가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가서 밥이나 해라”는 “제육이나 볶아오라”로 변주되며 밥 짓는 일을 모욕한다. 그러나 남성들의 요리는 특별하고 전문적인 것으로 승화된다. 셰프라는 직업은 명백하게 젠더화되어 있고, 방송 소재가 되는 것은 오로지 남자가 중심이 되어 요리하는 그림이다. 수명이 끝난 신조어지만,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는지. 요리하는 것이 섹시해질 수 있는 사람은 남자뿐이다. 드물게 <윤스테이>(tvN)가 윤여정을 메인에 내세웠는데, 이 경우는 ‘전문성’보다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강조하는 숙박시설에서 제공하는 식사라는 점에서 오히려 여성성이 필요했던 사례다.
<냉부해> 시즌 1은 셰프부터 패널까지 완전히 남자밭이었다.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자 <냉부해>에서 보여주기 식으로 겨우 ‘찔끔’ 부른 여성 셰프가 정지선 정도다. 냉부해 역사상 처음 등장한 여성 셰프로서, ‘쎈언니’ 프레임 속에서 ‘소수이기에 과대표 되는’ 존재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정지선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정지선은 이후 다양한 방송에서 요리 실력과 예능적 면모를 인정 받으며 체급을 키웠지만, 이는 혹독한 중식계에서 여성으로 살아남은 개인의 역량이다. 시즌 2에서는 <흑백요리사>에서 떠오른 박은영 셰프와 캐릭터가 맞춰지면서 중식계의 여성 셰프 대결이라는 구도가 짜였지만, 고리타분하다. 남성은 어떤 대결에서도 그저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미 남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냉부해> 시즌 2의 첫화에는 8명의 셰프가 출연하고, 이 중 2명이 여성이다. ‘급식대가’로 알려진 이미영과 ‘중식여신’이라는 별명의 박은영이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아니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썼다고 부연하고 싶은데, 이런 자기검열과 해명을 하는 것까지도 내가 여성 필진이기 때문이겠지? 내 마음 나도 몰라—우글우글한 남성들 사이에 앉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색내기용이었다. <냉부해> 시즌 2의 출연진은 유동적인데,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회차가 흔하다. 이미영은 1회 출연을 끝으로 사라졌고, 박은영은 가끔 출연해 맨끝자리에 앉아 있으며, 정지선이 이벤트성으로 출연한다. 단순히 ‘남성 셰프가 더 재미있고 인기가 많으니까’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해맑은 머릿속에 건배다. 방송은 당연히 시청자의 반응과 예능감을 중시한다. 하지만 코미디언이 아닌 이상 ‘방송 각’이 나오는 것은 결국 연출의 문제다. 핵심은 ‘누구를’, ‘어떻게’ 방송용으로 빚어내는가, 어떤 환경을 구축하는가에 있다.
한때 남자들만이 판치던 10여년 전의 대한민국 예능계는 ‘알탕 예능’ 또는 ‘알탕 카르텔’이라고 불렸다. <냉부해> 시즌 2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새로운 남성 셰프들이 등장하고, 관계성을 형성하여 서로의 캐릭터를 조형해준다. 예능에서 캐릭터와 관계성은 매우 중요하다. 시즌 1에서 소금을 흩날리며 뿌리는 행동에 방송이 ‘허세’라는 캐릭터를 부여해서 히트쳤던 최현석처럼, 이연복과 김풍이 사제 관계를 형성하며 비전문가인 김풍의 요리 예능 출연을 방어하는 방파제 역할을 한 것처럼. 시즌 2에 새로 출연한 권성준은 허세를 부린다는 특징을 공통점으로 최현석과 케미스트리를 일으켜 스승-제자의 관계를 형성한다. 권성준과 윤남노는 자신들의 외모를 예능 소재로 삼아 수려한 외모와 깔끔한 태도로 ‘느낌 좋은 남자’라는 의미의 ‘느좋남’이라고 불리는 손정원에 대항하는 ‘반(反) 느좋’ 연합을 형성한다. ‘그남들’의 세계에서 그나마 출연 빈도가 잦은 박은영 셰프는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중식 셰프로서 이연복이 나올 때 간신히 대가와 신예의 대결이라는 서사가 붙는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심사위원 출신 김소희가 출연했을 때 최강록과의 인연이나, 압도적인 실력을 조명한 것이 모든 회차를 통틀어 유일하게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박은영은 특유의 씩씩함으로 척박한 현실을 돌파하는 중이지만, 그가 스승 여경래와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과 비교하면 냉부해 세계관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러브라인 외의 관계성에 활용할 줄 모르는 티가 너무 난다. 냉부해만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감수성을 보여준다.
외국인 혹은 이주민은 어떨까? 시즌 1의 대표적인 외국인 셰프는 미카엘이었다. 백인이다. JTBC 유튜브 채널이 올린 <설특집 외국인 셰프 한마당 : 본인 나라 자존심 걸고 김풍 이기려고(?) 한국까지 날아온 셰프들ㅋㅋ> 영상은 시즌 1 모음집인데, 썸네일에 백인과 동아시아인만이 가득하다. 시즌 2에서는 파브리, 에드워드 리, 조셉이 출연했는데 백인이거나 한국계다. 에드워드 리는 ‘균이’라고 불리며 귀엽게 연출(소위 ‘모에화’)되는데, 이는 그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대화하는 외국인을 ‘그 언어의 수준에 해당하는 연령대’로 대하는, 유아화하는 태도는 인종차별적이다. 외국인 셰프는 한국과 한식에 호의적이고 친근해야만, 무해하고도 좋은 이방인으로만 방송에 등장할 수 있다. 5월 11일 방송은 아시아 셰프 특집이었는데 일본과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의 셰프들이 출연했다. 아시아는 엄청나게 크지만 셰프들의 외모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중 심지어 홍콩 대표인 안티모는 이탈리아인이다. 지금의 한국은 부정할 수 없는 다국적 사회이고, 스펙트럼은 이주민부터 다국적 가정의 2세, 3세까지 포함한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고수들이 많고 국적이나 외모 또한 다양하다. 그럼에도 전문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각종 대회에서 상을 수상하고 세계 랭킹 몇 위고 별이 몇 개고, 이런 기준의 ‘셰프’는 남성/가급적 유색 인종이 아니거나 한국인과 흡사한 얼굴로 등장한다.
<냉부해>가 대표하는 미디어 속 셰프의 세계는 이다지도 이상하다. 누구든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데 특정 조건의 사람들만이 요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셰프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대량 조리 통칭 ‘급식’ 또한 백종원의 <백패커>(tvN), 이연복의 <한국인의 식판>(JTBC), 도경수와 이광수의 <콩콩밥밥>(tvN)처럼 남성이 주도했다. 미디어는 압도적인 조리의 규모를 시각적 스펙터클로 연출하고, 이를 지휘하는 호스트의 능력을 강조한다. 고등학생들이 급식에 도전하는 <고교 급식왕>(tvN)에서 여성 급식 조리사들이 조력자로 등장하는 정도가 약간의 특이점이다. 외국인들이 ‘K-급식’에 놀라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국뽕’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실제로 대량 조리의 현장에서, 학교와 병원 등을 불문하고 급식을 책임지는 급식조리사들이 그 양질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의 노동을 하는지는 지워진 채 말이다(<흑백요리사>에서 이미영이 화제가 된 이유는 그만큼 급식 조리사의 실무 능력이 ‘낯설고 신선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대전 둔산여고의 급식조리사들이 업무 강도 완화를 요구하며 파업했다. 그러자 학생들을 볼모로 잡는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급식조리사를 ‘밥 하는 아줌마’로 취급하는 분위기는 단순한 멸시를 넘어서 이 문제를 노동으로 해석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여자와 이주민이 만든 음식을 먹어본 자, 급식을 먹어본 자, 이 낡은 도식을 깨뜨리는 투쟁에 한 술 보탤지어다.

<이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