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서울을 대표하는 건물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들고 싶다. 이 건물들은 여러 면에서 대칭적이고 대조적이라 서울을 대표할만한 건물이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는 도심지 동쪽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도심지 서쪽에 각각 자리해 먼저 위치상으로 대칭을 이룬다. 또 디자인플라자는 지상에 지어진 데 반해 역사박물관은 지하에 세워지고, 디자인플라자가 곡선의 미를 뽐내면 역사박물관은 직선의 미를 자랑하는 점에서 서로 대조적이다. 그리고 디자인플라자는 서양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하고, 역사박물관은 국내 건축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이뤄졌다.
환한 하늘광장 옆 지하 명상 공간
노자 철학과 통하는 박물관 설계
국내 건축가들 협업 직선 강조해
곡선 지향 디자인플라자와 대비
도심 동서쪽 각각 자리한 두 건물
서울 경쟁력 위한 바람직한 대칭
디자인플라자 터 과거 정치 집회 장소

디자인플라자가 있는 곳은 원래 서울운동장이 있던 자리다. 당시 야구장·축구장 등이 있었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잠실종합운동장이 있기 전까지는 축구와 야구의 주요 경기를 여기서 다 소화했다. 해방 직후 좌우 갈등으로 인한 혼란한 시기에는 정치 집회가 자주 열려 지금의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 같은 역할을 했다. 조선 시대에는 훈련원 터라 확 트인 공간이었다. 이런 넓은 공간인데도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이 워낙 커 답답하게 느껴진다. 좀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해 지었거나 아니면 건물이 조금 작았으면 건물도 살고 공간도 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런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지하에 있어도 별로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상이 전부 공원이고, 지하에는 천장이 훤히 뚫린 공간이 크게 자리해서다. 이곳으로 가는 입구는 세 개인데 모두 낮은 데로 임하도록 설계된 데다 낮은 데로 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라 입구부터 인상적이다. 서쪽 입구에선 계단과 비탈길을 이용해, 남쪽 입구에선 비탈길만 이용해, 공원과 연결된 위쪽 입구에선 계단만 이용해 낮은 데로 임한다. 어떤 입구로 들어가든 지하에서 작은 광장을 만나는데 본 건물 출입문이 거기에 있다. 이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서 두 층 정도 내려가면 열린 직사각형의 공간을 만난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어째서 여기에 반듯한 공간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머물수록 공간이 주는 메시지에 발걸음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건 붉은 벽돌로 촘촘히 둘러싸여서다. 그래서 벗어나거나 도망칠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고개를 들면 열린 천장을 통해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은 이미 허공을 향하게 돼 여기는 해방의 출구가 된다. 아니 구원의 출구도 된다. 게다가 직사각형의 공간 옆으로는 터널과 같은 하늘길이 있는데 어두운 조명이 아래로 깔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신비한 체험을 한다.

해방이든 구원이든 이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들어선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난다. 맞은편에 나란히 서 있는 형상들(정현의 ‘서 있는 사람들’·사진)이 내 모습을 잘 투사하고 있어서다. 버려진 철도 침목으로 만들어진 이 형상들의 표정은 지치고 우울해서 그야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계속 응시하다 보면 여기서도 희망의 끈을 본다. 열린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이 이들을 환히 비춰서다. 그렇다면 햇살이 더 따사로우면 환희의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곳을 하늘광장이라 명명한 건 이 때문이라 본다.

하늘광장 옆으로는 명상 공간(콘솔레이션 홀)이 붙어있는데 이 공간은 하늘광장과 달리 어둡고 침침하다. 그러니 명상 공간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우리를 명상으로 유도한다. 명상 공간과 하늘광장은 별개의 공간이라 서로 구분돼도 25개의 문이 나란히 달려 언제든지 연결을 이룬다. 이 문은 평소에는 닫혀 있는데 특별한 날에는 열린다. 그러면 명상 공간은 하늘광장과 이어져 하나의 공간이 됨으로써 어둠과 밝음의 구분도 자연히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에 어째서 문을 많이 설치했을까? 기독교적으로는 구원을, 불교적으로는 해탈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노자도 문(門)의 개념에 주목한다. 유(有)와 무(無)는 보기에 따라 다른 게지 실제로 같다는 게 그의 철학의 핵심이다. 그래서 『도덕경』 1장에서 ‘무는 천지의 시작을 말하고, 유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해도 이것들은 같은 데서 나왔기에 이를 현(玄)이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 하고 또 현 하니 많은 오묘함이 깃든 문이다’고 한다. 노자는 이처럼 자신의 철학을 형이상학적으로는 ‘현’으로, 형이하학적으로는 ‘문’으로 요약해 설명한다. 벽으로 인해 갈라진 이쪽과 저쪽이 문을 통해 연결돼서다. 마치 하늘광장과 명상 공간이 밝음과 어둠으로 구분돼도 이런 구분이 문을 통하면 사라져 ‘현’의 상태로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소문성지 천주교 신자 처형 장소
그런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여기에 어째서 세워졌을까? 조선 후기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해서다. 서울에 처음 세워진 약현성당이 인근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약현성당을 짓고 2년 후에 명동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크기만 다르고 모양이 비슷한 건 같은 건축가가 설계해서다. 또 천주교 신자들이 어째서 여기서 많이 순교했을까? 서소문공원 터는 조선 시대 칠패 시장이 있던 곳이다. 처형 효과는 사람이 많이 보는 데서 해야 크므로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구 대법원) 자리에 있던 처형장을 이곳 시장터로 옮겨 왔는데 이 시기에 천주교 신자에 대한 처형이 많이 이루어져서다.
역사박물관은 성지 차원을 넘어서 건축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이 건물에서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맛볼 수 있어서다. 선은 인류 최초의 표현양식인데 직선은 강하고 이성적인 데 반해 곡선은 부드럽고 감성적이다. 자연은 직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져도 대부분 곡선이다. 반면 직선은 건축물, 특히 근대 건축물에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직선은 ‘네/아니오’나 ‘선/악’처럼 이분법적 사고를 엄격히 해 인위적인 성격이 짙다. 이에 반해 곡선은 대상을 유연하게 가른다. 곡선의 이런 성격이 잘 나타난 데가 태극(?)이다. 태극에선 음양을 구분해도 상대적으로만 구분해 절대적인 양과 절대적인 음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곧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디자인할 때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두고 고민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폰의 가장자리 선은 곡선으로, 그것을 연결하는 부분은 직선으로 처리해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최대한 이루었다. 잡스가 삼성의 갤럭시폰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낸 것도 기기 성능이 아니라 디자인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잡스는 아이폰의 디자인을 소중히 여겼는데 대학 시절 붓글씨를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다. 참고로 붓글씨는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예술이다.
역사박물관 직선·곡선 조화도 추구
역사박물관을 모두 둘러보면 직선과 곡선의 조화에 신경 쓴 건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하늘광장과 명상 공간은 직선으로 설계되고,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은 곡선으로 설계돼서다. 그래서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느낌을 받는데 하늘광장과 명상 공간을 곡선으로, 역사박물관을 직선으로 서로 반대로 설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늘광장에 펼쳐진 직선들의 조화가 이런 생각을 말끔히 잠재운다. 하늘광장의 직선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선의 미학이 삶과 죽음의 이분법적 사고를 각인시키기보다 초월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와서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택한 순교도 이런 초월의 정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역사박물관은 이처럼 천주교 순교의 역사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반면 디자인플라자 건물은 이곳의 역사와 잘 연결되지 않아 뜬금없어 보이는데 미래지향적이라 나름 존재 가치를 지닌다. 근대의 직선 시대를 마감하고 곡선 시대를 새로이 연다는 의미에 더해 이 건물이 우주선이 내려와 앉은 모습이라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대조적이고 대칭적인 두 건물이 동과 서에 서로 마주하는 것은 서울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김정탁 노장사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