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하는 일

2024-10-21

어떤 강연에서 독자의 질문을 받았다. “싸고 편리한 전자책의 시대입니다. 비싸고 불편한 종이책은 곧 사라지겠지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를 눈으로만 보는 건 삶이 아니지요. 연인을 만나듯 종이책을 읽는 동안 공감각이 모두 동원됩니다. 책은 그 자체로 실존하는 예술품이에요. 책의 물성은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손으로 느끼며 읽는 종이책은 전자책과 다릅니다.”

나는 가끔 종이책이 유기체처럼 생각된다. 전자책과 달리 종이책에서 생명감이 느껴진다.

손, 두뇌 진화에 핵심적 역할

손으로 만지면서 공감각 느껴

종이책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책을 손으로 잡으면 책의 무게감이 생의 중량으로 다가온다. 책장을 넘기며 문장에 밑줄을 그을 때, 시공을 뛰어넘어 저자와 독자인 내가 소통하는 것 같다. 손이 ‘감각하는 두뇌’로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최근 온라인에 쓴 글을 책으로 발간해서 100쇄를 찍은 화제의 작가를 만났다. 그는 중학교 중퇴로 주물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단순 반복의 작업 환경에서 혼자 상상한 글을 밤마다 인터넷에 올렸다. ‘기발한 상상력’은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고 학생들의 우상이 된 그의 별명은 초통령이었다. 그를 알아본 출판사에서 책을 발간하자 그는 뛸 듯이 기뻤다고 했다. 생애 처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책을 손으로 만지며 눈을 반짝거렸을 것이다.

종이책은 그를 모니터 밖으로 끌어내어 현실의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는 집필과 강연에 몰두하는 작가가 되었다. 온라인 세상은 열렬한 반응이 있어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 가상의 인간관계는 한계가 있고 고립을 초래하기도 한다. 유일한 취미였던 게임도, 그가 밤마다 쓰고 찬사를 받던 온라인의 글도, 자신의 책이 발간된 기쁨을 뛰어넘지 못했으리라. 현실은 종이책과 함께 생의 무게도 그의 어깨에 얹었을 것이다. 온라인 세상이 익명의 무책임이라면 현실의 세상은 실명의 책임이 따른다.

존 레넌의 노래 ‘Love’에 사랑은 촉감이고 현실이라는 가사가 있다. 사랑만 그런 게 아니라 인생도 그렇다. 손으로 만지는 순간 타자의 모든 것이 공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무용교습소에서 처음 만나는 파트너의 손을 잡으면 이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미세한 떨림과 악력에서 성격까지 파악이 된다고 한다. 직업에 따라 손이 거칠 수도 있고 부드러울 수도 있다. 외양으로 보이는 것은 타인의 시선일 뿐이다. 나의 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만지고 느끼며 손이 인지하는 감촉이다.

외식을 하러 나온 가족들이 각자 핸드폰에 코를 박은 장면을 드물지 않게 본다. 식구들이 서로 대면하지 않은 채 각자의 방에서 온라인으로 의사소통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이란 눈을 마주치고 손으로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는 존재가 아니던가. 스마트폰과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고 리모컨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삶은 내 손이 느끼는 실재감이다. 인생의 중량은 손에서 어깨로 온다.

뇌과학자들은 컴퓨터 자판을 치기보다는 연필로 글을 쓰라고 말한다. 손은 제2의 두뇌여서 손을 쓰면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 진화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연필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안다. 나도 책상에 앉아 노트에 연필로 글을 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경계의 인간인지라 가벼운 글은 자판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니터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에 피로가 쌓여 집중이 되지 않는다. 연필로 글을 쓰면 주제에 몰입하게 된다. 습관이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내 손을 믿고 의지해왔던 것 같다.

가끔 내 손을 올려 투명한 햇살에 비춰본다. 손은 오랜 세월 나를 대변해 왔다. 긴장하면 움켜쥐고 슬프면 늘어트렸다. 간절할 때 두 손을 모았고 기쁠 때 손뼉을 쳤고 거절할 때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손이 발이 되도록 빈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자존심은 손이 결정하지 않았나 싶다.

가늘고 섬세하고 긴 손가락을 가진 손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내 손은 모계 유전자의 발현으로 솥뚜껑처럼 크고 넙데데해서 부끄러웠다. 힘 좋던 젊은 시절 악수를 하면 상대의 웬만한 손은 내 손아귀에서 바르르 떨었다. 투박하고 큰 외향과 달리 손의 감각은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부계 형질이지 싶은데 악수를 하든 물체를 잡든 직관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상에서 나의 손이 가장 많이 하는 부분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다. 책을 손에 잡았을 때 손이 먼저 직감한다. 표지와 질감, 무게감 등에서 책을 만든 편집진의 고심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전자책을 읽으면 쉽게 잊어버리는 문장도 종이책을 읽으면 뇌리에 각인이 된다. 눈이 읽듯 손도 읽는다. ‘Love is touch’이듯 ‘Book is touch’가 맞다. 종이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손이 하는 일이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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