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테크

2024-10-20

얼굴이 반쪽이 되다, 얼굴에 다 씌어있다,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낯짝이 두껍다···.

얼굴이 들어간 표현들에서처럼 ‘얼굴’은 인간의 정체성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위다. 그 얼굴이 짓는 ‘표정’은 언어를 초월하는 가장 원초적인 소통 방식이다.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에서 표정을 환경적 도전에 대한 진화된 반응이라고 가정했고, 이러한 표정이 인간에게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간 아닌 동물과도 유사성을 공유한다고 주장했다. 진화론에서는 표정이 생존을 위한 적응 메커니즘이며,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 작용을 돕는다고 해석한다.

표정은 가장 원초적 소통 방식

직관적이고 친근한 표정 기술

신기술 경쟁 핵심 요소로 주목

인간 감정을 다룬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주인공 라일리는 친구들이 자신과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읽어 알아차린다. 이때 주목한 것은 미간이었는데, 라일리가 친구들 미간의 움직임, 주름의 깊이, 씰룩임과 찌푸림의 정도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뭔가 이상함을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눈치채는 장면이 묘사된다.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타인의 표정을 읽어내는 것이 무척 중요한 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표정 문맹자’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남의 표정을 잘못 읽는 사람들 혹은 알아차리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말한다. 코로나 비대면 시기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했던 3년의 시간 동안 대면 접촉이 어려워진 사람들은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힘들었고, 이는 사회적 고립감을 증가시키며 비언어적 소통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켰다. 코로나 시기의 경험을 통해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사회적 유대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인간관계의 핵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논리가 신기술 세계에 고스란히 대입되고 있다. 풍부한 표정을 짓는 로봇, 인간의 섬세한 표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디지털 휴먼, 디지털 사이니지(LED 혹은 LCD 디스플레이)에 표정으로 상태를 표시하는 전기차 등 신기술의 첫인상이 다채로워지며 인간화되고 있다. 기술은 최대한 ‘인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싶어한다. 기술에 표정이 입혀지면 긍정과 부정에 대해 적어도 50% 확률로 대상 기술이나 제품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제대로 작동하고 있구나’, ‘뭔가 잘못 사용하고 있구나’처럼 직관적으로 정보를 알아차리도록 돕는다. 직관적인 기술설계는 사용자가 쉽게 학습할 수 있게 해주고, 이는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비용절감 효과로 이어진다.

기술의 직관성이 높아지면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사용자가 다른 선택지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현대 시장에서는 직관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기술이 브랜드의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고도화된 최신기술의 집약체인 로봇 역시 그렇다. 로봇의 표정은 상호작용을 보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로봇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인지적 부하를 줄여준다. 이는 노인이나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할 수 있으며, 로봇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사용자 경험과 참여를 향상할 수 있는 의료·교육·고객서비스와 같은 환경에서 특히 중요하다.

기술의 첫인상을 어떻게 줄 것인가? 표정을 그려 넣을 것인가, 간단한 정보만 줄 것인가. 음성으로 소통할 것인가, 터치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터치스크린의 크기는 어때야 심적 부담을 줄이고 조작 편의성을 더 높여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답이 인간 표정에 숨어있다. 생성형 AI 만능시대,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기술은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미 뒤에 숨으려 한다. 친근한 얼굴과 긍정적인 표정을 만드는 일, 표정을 읽고 분석하는 일, 즉 ‘페이스 테크’(Face Tech)는 신기술의 향연 속 경쟁 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신종무기인 셈이다.

‘얼굴은 한 사람의 가장 좋은 추천서(A good face is the best letter of recommendation)’라고 하지 않던가. ‘중년이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란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얼굴과 표정에는 정체성과 진정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 이것이 비단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 번 되돌아보자. 당신의 기술은, 상품은, 아니 당신은 고객에게 어떤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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