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회사 생각 사라져요"…블핑 로제가 유행시킨 장난감

2025-08-08

카페에서 주로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 박모(29)씨는 요즘 일을 할 때 전보다 훨씬 더 손이 바쁘다. 오른손에는 마우스, 왼손에는 ‘말랑이’(말랑말랑한 소재로 만든 장난감)를 쥔 채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 들고 다니는 감자빵 모양의 말랑이에 ‘매시드(Mashed)’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손에 땀이 많이 나고 불안해지는데, 매시드를 만지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된다”며 “화가 날 땐 인정사정없이 주무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20~30대 사이에서 말랑이 같은 ‘저자극 콘텐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말랑이나 슬라임처럼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작은 장난감을 만지고 놀거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ASMR 영상을 찾아보는 식이다. 뜨개질이나 식물 가꾸기 같은 정적인 취미도 젊은층 사이에 인기를 끈다.

틱톡에 올라와 있는 슬라임 관련 게시물만 약 5억개에 달하며, ASMR은 지난해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키워드였다. 해시태그 ‘#말랑이’가 포함된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7만개가 넘는다. 어린이용 장난감으로만 인식되던 말랑이는 특히 지난해 11월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보그 코리아’ 유튜브 채널에 나와 소개하며 성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말랑이 팝업 코너가 생겼고, 영화관에선 올해 초 뜨개질과 영화감상을 함께 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저자극 콘텐트를 즐기는 사람들은 “잡생각을 지우고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이송이(24)씨는 “회사에서는 서로 딱딱하게 대하는 사람들밖에 없는데, 말랑이를 만지면 부드럽고 말랑한 촉감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진정이 된다”며 “늘 가방에 넣어 다닌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로제 덕분에 알게 됐는데,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고 궁금해져 사다 보니 7개나 모았다”며 “세상엔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말랑이는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도파민 폭발 콘텐트’가 쏟아지다 보니 오히려 자극보단 편안함을 주는 콘텐트를 찾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일하는 직장인 오모(25)씨는 최근 AI로 만든 각종 ASMR에 빠졌다. 오씨는 “일 때문에 무척 지치고 피곤하다 보니 자극적인 콘텐트는 피하게 되는 것 같다”며 “집에 가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유리 과일을 자르거나, 젤리로 만든 키보드를 누르는 영상만 본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처럼 저자극 콘텐트가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그냥 쉬는 것이 아닌, 일상을 정리하고 뇌가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때 과격한 운동을 취미로 많이 선택하는 때도 있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 일부는 이렇게 뇌를 충전하고 준비시키는 게 사회생활을 하고 공부를 하기에 더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며 “저자극 행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알파파는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력도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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