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하고 주변에도 꼭 알려주세요···‘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가이드북’

2024-11-14

“경찰서부터 가면 되는 거야? 가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에게 형사소송 절차는 높은 장벽이다. 당장 법률 지원을 받기 힘든 상황이라면 신고나 고소를 하기가 더 어렵다. 그런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는 당신이 신고나 고소를 해서가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라고 위로를 건네며 증거 확보부터 신고, 수사에 이르기까지 지침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에서 13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수사절차 가이드북 피해자 노트> 발간 기념 설명회가 열렸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소송 절차에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 제작된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은 피해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증거 확보’라고 조언한다. 온라인 대화방이 있다면 기록을 삭제해선 안 된다거나, 사건이 발생하고 사흘이 지나지 않았다면 사건 당일 입었던 옷을 속옷과 분리해 세탁 없이 종이봉투에 보관하면 좋다는 등 구체적인 대처법을 담았다. 피해 사실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관계, 범행 직전 1시간 동안의 상황,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등 노트에 적힌 내용을 따라 적으며 스스로 피해 사실을 정리할 수 있게 돼 있다.

경찰서에 제출할 고소장을 작성할 때도 이 책에 나와있는 예시를 참고할 수 있다. 책에는 “경찰 조사에 들어가면 꼭 조서에 남기고 싶은 내용인데도 수사관이 물어보지 않아서 대답하지 못하거나 말하는 걸 잊어버릴 수 있다”며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라는 조언도 담겼다. 가해자를 어떤 혐의로 고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의 ‘죄명 찾기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된다. 알고리즘의 각 질문들을 따라가며 모두 답변하면 가해자의 죄명을 파악할 수 있다. 경찰에서 가해자를 불송치했을 때 피해자가 불복할 수 있는 수단들, 각 단계에서 참고하기 좋은 사이트들도 활용할 수 있다.

그간 법조계와 여성계 등에서는 피해자 친화적인 지침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피해 사실 진술을 주저하고 복잡한 수사 절차에 어려움을 느끼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실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9년 경찰청과 대한변호사협회가 제작한 ‘자기변호노트’라는 가이드북이 일선 경찰서에 배포됐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해자 노트를 만든 마태영 국선전담변호사는 “피해 사실을 얘기하는 것조차 너무 힘든 사람들이 있고, 지방에만 가도 가까운 상담소에 가는 데 1시간 넘게 걸리는 사례들이 있다”며 “홀로 피해 사실을 붙잡고 있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정확한 정보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피해자들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제작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피해자 지원책이 확대돼 이 노트가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피해자 노트 책 전문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수사절차 가이드북 피해자 노트

▼ 김나연 기자 nyc@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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