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 파는 아이, 곡비>의 곡비 ‘아이’는 이름이 없어 ‘아이’로 불린다. 청조 아씨의 꽃신을 훔쳐갔다는 도둑 누명을 쓸 때도 울지 않던 아이는 양반이 죽으면 대신 곡을 해 주는 곡비의 딸로 태어났기에 울어야 하는 운명이다. 하지만 그 일에 소질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동안 간헐적 곡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엄마를 비롯해 집안 여자들이 내는 곡소리는 판에 박힌 듯 똑같았다. 하나 같이 ‘아이고, 아이고!’를 박자에 맞춰기계적으로 뱉어 내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듣다 못 한 할아버지가 관을 박차고 일어나서 이렇게 외칠 것만 같았다.
“이놈들. 나 죽어붕게 시원혀냐? 허벌나게 울어도 모자라분디 고따구로 운다냐!”
하며 꽃상여가 부서지라 되살아나는 상상에까지 이르렀다. 그날 이후 내게 죽음이란, 다만 죽은 자만의 슬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자에게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은 형식이요 과정일 뿐이라고. 그러니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울고 싶지 않아도 울어야 하는 곡비인 ‘아이’와 반대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이 오생이 있다. 오생은 팽형(죄인을 솥에 삶는 벌로 삶는 척만 하는 형벌)으로 인해 13년째 살았어도 죽은 거나 진배없는 아버지를 둔 죄로 호족에 오르지 못하고 과거도 못 보는 형벌에 묶여 살아가야 한다. 벼슬길에 오르고 싶은 오생의 꿈은 잘못된 법으로 인해 시작부터 사장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오생에게 ‘아이’는 운다고 해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가라 한다.
오생의 아버지 또한 “나는 왜 사는 걸까?”라는 오생의 물음에 “밥맛이 밥 먹을 때 나듯이 사는 맛도 살아 있으면 알게 되겠지.”라며 자신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은 아들에게 끝까지 살아서 삶의 이유를 증명하라며 넌지시 말을 건넨다. 오생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존재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지 싶다.
동화에서 죽음을 다루는 일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동화라고 그런 책임에서 비켜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곡비라는 신분과 팽형으로 존재를 부정당한 아이를 내세워 죽음이 남아 있는 자들에게 고통이 아닌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을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오늘 누군가는 조용히 죽었고, 누군가는 울면서 태어났고, 누군가는 저렇게 웃으며 살고 있다. 어머니가 말한 인생이란 게 이런 거구나.’(p.89)에서 말하듯 탄생과 죽음은 삶의 과정일 뿐이다. 누구 하나 예외가 없는 생사의 길 위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소중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을 지키고 가꾸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죽음을 뜻 깊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눈물이 동그란 이유는 멀리 굴러가라는 뜻이란다. 뭐가? 슬픔이나 미움이. 오늘 비가 동그랗게 내린다. 어디선가 이 빗소리에 기대 동그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부디 그의 슬픔과 미움이 빗물과 함께 멀리 떠나가길. 더불어 오생처럼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 곡비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
김근혜 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장편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나는 나야!>, <봉주르요리교실 실종사건>, <다짜고짜 맹탐정>, <베프 떼어 내기 프로젝트>, <들개들의 숲>, 청소년 소설<유령이 된 소년>, <너의 여름이 되어 줄게>(공저), 오디오북<날아라 자전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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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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