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꿈에서도 바둑을 둔다”…지독한 승부사 신진서

2024-10-22

신진서 9단은 2000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현재 24세다. 5세 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바둑학원에서 바둑을 배웠고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바둑의 일인자가 되었다. 그 신진서가 자신의 여정을 담은 책 『대국』(사진)을 펴냈다.

‘바둑 꿈을 자주 꾼다. 길을 가다가 묘수가 떠올라 메모하고, 밥을 먹다가 어제 풀리지 않던 문제의 길이 보여 숟가락을 놓고 한참 생각한다.’

예전 이창호 9단과 비슷하다. 꿈속에서도 바둑에 빠져들어야 정상에 오를 자격이 부여되나 보다. 어린 시절 신진서가 작성한 1일 생활기록표를 옮겨본다.

오전 9시 잠에서 깸. 기보 2개. 아침 겸 점심. 씻으면 11시 정도. 인터넷 바둑. 기보. 사활. 기보. 인터넷 바둑. 사활. 3시 정도 간식. 인터넷 바둑(지면 이길 때까지 둔다). 기보. 인터넷 바둑. 6시 저녁밥. 휴식 후 7시에 기보. 또 인터넷 바둑. 가끔 밖에 나감. 기보. 휴식. 인터넷 바둑(지면 또 둔다) 마지막 인터넷 바둑. 지면 1시에 자고 이기면 12시에 잠.

신진서는 어린 시절 인터넷 바둑에 미쳤다. 컴퓨터게임처럼 바둑을 즐겼고 승패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부산에서) 서울 응암동에 올라오기 전까지, 사실 올라오고 나서도 한동안 내 바둑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는 둘이었다. 하나는 아버지. 하나는 인터넷.’

신진서는 스승이 따로 없다.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있었다. 축구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씨를 떠올리게 하는 아버지 신상용씨.

‘아버지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바둑 스승이자 코치다. 어려서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들어주셨다. 딱하나 바둑에서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어린 시절 인터넷의 10초 바둑에서 손에 익은 초속기 버릇을 고치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는 “몇 초만이라도 기다렸다가 둬라”며 불호령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신진서는 천방지축이었고 아버지는 그걸 깎고 펴는 데 집중했다.

‘이 속기 버릇은 프로가 되고 나서도 수년이 지나기까지 떠나지 않아 중요 순간마다 내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약점이 됐다. 지금 돌이켜봐도 당시 내가 둔 바둑은 바둑과 바둑이 아닌 것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형태였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착점하고 정신없이 상대를 두드려 승리를 따내는 것이 내 바둑의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나를 100% 인정하는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요새는 가끔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진서, 사람 됐네.’

신진서는 초등학생이던 2012년부터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그동안 치른 수많은 승부 중에서 가장 쓰라린 패배는 온라인으로 치러졌던 2020년 11월 삼성화재배 결승, 가장 자랑스러운 승리는 올 2월의 농심배 6연승 우승을 꼽는다.

신진서는 요즘 AI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AI가 최고의 스승이자 스파링 파트너가 된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교감을 나눈다 해도 기계는 기계고, 인간은 인간이다. 신진서는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바둑을 지면 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아이’였다. 아침형 인간과는 반대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조금 멋대로 생활했기에 아시안게임을 위해 선수촌에 들어갔을 때는 생체 밸런스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대국』이란 책에서 신진서는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지면 눈물이 날 정도로 분하고 이기기 위해 밤을 새워 칼을 갈며 승리를 위해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달려가는 내 성질이 오직 바둑에서만 발현되는 게 참 다행스럽기도 하다.’

‘바둑만 생각하고 살아온 내 인생에서 바둑을 떼어내면 ‘나’는 무엇일까?’

바둑기사로서 신진서는 세계 최고수가 됐고 아직 성장 중이다. AI를 넘어서는 것은 그의 꿈이다. 하나 인간으로서는 이제 겨우 24세 청년이기에 그 역시 많은 의문 속에서 살아간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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