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스위트 스팟'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2025-08-03

의문의 배트가 올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물론 국내 프로야구까지도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연이은 홈런포를 이끌어낸 '어뢰 배트'. 이 배트는 미시간대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MIT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마이애미말린스의 필드 코니네이터로 활동 중인 에런 린하르트가 개발한 것이다.

수년간의 데이터 분석 끝에 그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타자들이 생각보다 자주 공을 맞히는 지점은 배트의 정중앙이 아니라 손잡이 쪽이라는 점이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배트의 질량을 기존과 다르게 분포시키며, 최적의 타격 지점, 즉 '스위트 스팟'을 재설계했다. 기술과 데이터에 기반해 수십년간 '관행'처럼 유지돼 온 배트의 형상을 새롭게 해석한 이 배트는 현재 MLB의 강타자들이 사용하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기존에 간과되었던 새로운 스위트 스팟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는 비단 스포츠에만 머물지 않는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변수들과 그 사이의 복잡한 상관관계가 알고리즘으로 정형화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일상 곳곳에서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스위트 스팟의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의 리스크 관리 영역은 이러한 기술적 전환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다.

대표적인 사례로 개인신용대출 과정에서 이뤄지는 리스크 평가 방식의 진화를 꼽을 수 있겠다. 기존의 신용평가는 소득, 신용점수, 부채비율 등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연체 가능성을 예측해왔다. 하지만 최근 고객이 어떤 대출 상품을 '실제로' 선택하는지를 하나의 의사결정 데이터로 간주하고 그 선택의 맥락 자체를 리스크 판단의 주요 변수로 삼는 접근법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금융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영향을 주는 대상이 '모든 조회 고객'이 아니라 '실제로 대출을 실행하는 고객'이라는 데 착안한 변화다. 과거의 리스크 평가 과정 전반에서 오랜 시간 답습하며 당연시 여겨온 점을 AI와 데이터에 기반해 혁신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어뢰 배트가 관행적 형태에서 탈피해 그 중심을 새로운 쪽으로 이동해 집중한 것처럼 말이다.

다만 어뢰 배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러한 혁신적 접근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금융 선진국에서 선보인 것이 아닌 기술로 금융을 혁신하고자 하는 국내 금융사들로부터 제시됐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필자가 속한 회사의 AI 금융기술 연구팀은 최근 반년간 신한카드와 함께 대출 실행 확률과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동시에 예측하는 새로운 리스크 평가 방법론을 연구해 왔다. 이는 '특정 조건(금리, 한도)에서 실제로 대출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먼저 선별한 후, 그 고객이 '대출을 받았을 때 잘 상환할 수 있을지'를 다시 한번 예측하는 이중 구조의 AI 모델을 다룬다.

이 연구는 단지 이론적 모델링에 그치지 않았고 월 80만건 이상에 달하는 비식별화된 실제 대출 데이터에 기반해 모델의 성능과 안정성을 실증적으로 검증했다. 그 결과 한국 금융사 최초로 AI 및 머신러닝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회인 ICLR 워크샵에 논문으로 등재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은 바 있다.

물론 해당 연구에서 제시한 새로운 리스크 평가 프레임워크가 당장의 연체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금융사의 수익성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마법의 배트'라고 확언할 수없다. 어뢰 배트를 만든 린하르트 역시 팬들의 기대 속에서도 “마법의 배트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그저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일 뿐”이라며,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진 기준을 의심하고 실험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금융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변화와 도전을 멈춘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능성은 영영 수면 아래에 머무를지 모른다. 기술은 그 자체로서 '마법의 배트'는 아니지만, 기술을 다루는 이들이 마법사가 될 수는 있다. 기술이 바꾸는 금융의 미래와 가능성을 믿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다. 스위트 스팟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이수환 PFCT 대표 soohwan@pfc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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