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생태계 구축:개발을 넘어 활용으로

2025-08-04

플라톤의 동굴 비유처럼, 우리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그림자만 보며 실체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재명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100조원 AI 투자와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이라는 두 개의 정책이 눈앞에 놓여 있지만,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찰이 부족하다면 거대한 투자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AI 파운데이션 모델 시장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중력장에 포획되어 있다.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등 모델들이 마치 플랫폼 제국주의의 첨병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디지털 종속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내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무리 우수한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도 실제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들과 기업들이 외산 모델을 선택한다면, 막대한 투자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치 케빈 코스트너의 영화 '꿈의 구장'에서 “만들면 그들이 올 것이다”라는 신념처럼, 우수한 파운데이션 모델만 개발하면 자연스럽게 사용자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네트워크 효과와 관성의 법칙을 극복하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나라 전기차 정책의 지혜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단순히 전기차를 개발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정교한 인센티브 설계를 통해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과 충전 인프라 구축 지원이라는 쌍두마차를 통해 내연기관차 중심의 생태계에서 전기차 중심의 새로운 질서로 대전환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충전기 설치 업체와 이용자 모두에게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생태계 전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핵심이다.

전기차 정책의 성공 DNA를 AI 분야에 이식해야 한다. 현재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되는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을 국산 AI 생태계 구축의 마중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 지원금의 일부를 AI 서비스 이용권 형태로 설계하되,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 서비스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마치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처럼, 작은 힘으로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에수 있는 전략적 접점을 찾아야 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AI 서비스 개발업체들이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을 사용할 때 API 사용료 지원과 개발비 보조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 업체에 지원금을 제공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되는 지원금처럼, 국산 AI 서비스 이용 시에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쿠폰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먼저 국산 AI 모델의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도 전기차 정책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 교훈이다. 정부 조달에서 국산 AI 모델 우선 사용을 의무화하고, 공공 서비스 개발 시 국산 모델 활용 비율을 설정하는 것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국산 모델의 신뢰성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의 선제적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국산 AI 모델을 활용한 에듀테크 서비스 개발을 지원하고,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국산 AI에 친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마치 어린 시절의 언어 습득이 평생의 모국어를 결정하는 것처럼, 초기 경험이 미래의 선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100조원 AI 투자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개발 중심의 공급자 논리를 넘어 활용 중심의 생태계 조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정책을 AI 생태계 구축과 연계한다면 복지와 산업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진정한 가치는 연구실 안의 성능 지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실제로 활용될 때 비로소 현현(顯現)되기 때문이다.

한세경 경북대 교수 skhan@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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