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메이트’,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2025-06-23

정치의 꽃은 바로 ‘선거’라고들 한다. 정치의 개념이야 우리 주변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과 조직운영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는 명분 아래 정해진 기간 특정 집단의 의사를 가장 확실하고도 치열하게 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두고 엄정한 관리를 주문한다.

하지만 그 선거가 항상 국민의 의견을 올바르게 수렴해 반영했다고 말하기도 겸연쩍은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선거가 시작된 해방 이후부터 늘 국가단위 선거는 갖은 모략과 권모술수, 각종 정치적인 프레임과 선전, 선동에 물들어 왔다. 멀리 볼 필요 없이, 당장 최근에 열렸던 제21대 대통령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연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정치의식도 바로 그런 것일까. 지난 20일 8편이 모두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러닝메이트’의 주제도 바로 그렇다.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행위가 아직은 미숙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삶의 영향을 끼칠까. 드라마는 그 극단적인 사례를 쏟아놓고 있다.

드라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공동각본가로 오스카 트로피도 쥔 적이 있는 한진원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2020년대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등장하는 학원물이 거의 모두 학교의 폭력이나 서열, 따돌림 등 부조리함을 액션의 형태로 드러냈던 것에 반해 ‘러닝메이트’는 학원 정치물을 표방한다. 학생회장 선거에 치열하게 매달리는 양측의 학생들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주인공 노세훈(윤현수)은 등교 때 버스에서의 실수로 큰 이미지 실추를 겪는다. 그런데 갑자기 다니던 영진고등학교의 유력 학생회장 두 명의 러브콜을 모두 받게 되고 결국 곽상현(이정식)의 제안을 받아 부회장 ‘러닝메이트’로 나선다.

하지만 학생회장 선거도 기성 정치인들의 선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각종 프레임 전쟁에 가짜뉴스, 각종 폭로와 의혹으로 선거는 얼룩지고, 그 과정에서 캠프 안 학생들의 민낯도 드러난다. 결국 선거는 막을 내리지만, 주인공은 그로 인해 인생의 큰 전환점에 서게 되고, 선거는 결국 주인공 세훈의 일생에 일면 뿌듯하지만 씁쓸한 기억만을 남긴 채 퇴장한다.

물론 정치를 학원물에 적용한 감독의 기지는 돋보였지만, 여러모로 신인 연출가로서의 한계도 명확했던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선거는 권력을 잡기 위한 욕망이 뚜렷한 이벤트인데 양측의 후보 곽상현과 양원대(최우성)의 욕망이 드러나지 않았다. 곽상현은 그저 학교의 ‘인싸(인사이더)’라는 설정만 있고, 양원대는 이전 부회장이었다는 설정만 있다.

각 후보가 권력을 잡으려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니 이들의 과열 양상이나 광기에 가까운 중반 이후 행동들에 대한 수긍이 쉽게 가지 않는다. 여기에 유일하게 교사 캐릭터인 선거관리 담당 신준규(박근록)의 모습은 선인지 악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애매하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니 극 전반을 휘감는 선거운동의 에너지가 잘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거기에 초반 공약 위주로 진행되던 선거가 공보물 훼손 사건으로부터 과열되기 시작하는데 급격하게 과열되는 분위기 역시도 초반에 감정을 쌓아 올리던 과정이 헐거워 다소 갑작스러워 보인다. 막바지 결말에서도 결국 피해자는 주인공이었는데 주인공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선택을 하는 이유 역시도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드라마는 학원 정치물을 택했지만, 그 선거는 기성 정치인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를 해하려 하거나 불법을 동원하는 잘못이 더 컸다는 점에서는 더 혼탁했다. 단순히 주인공이 학교를 그만두고, 잘못을 저지른 후보가 미국에 가는 결말이 학생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짐작하기 쉽지 않다.

결국 작품이 해낸 것이 있다면, 기존 정치에 대한 시청자들의 ‘혐오’나 ‘허무주의’를 다시 한번 자극했다는 정도의 수준이다.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나 하는 허탈함이다. 매번 선거에서 편을 갈라 싸우고 끝난 후 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좀 더 견고한 진영 간의 갈등만을 부각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한 오마주라면, 탁월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현실을 단순히 그대로 갖다 비추는 선에서 그친다면 예술로서의 가치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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