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모병제, 대선용으로 던질 일 아니다

2025-04-21

대선 주자들 병역개편 공약 쏟아내

안보 공백 초래하는 포퓰리즘 우려

모병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 많아

중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모병제 논란이 뜨겁다. 6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의 대선 경선 후보들이 모병제 전환과 확대 등 병역제도 개편 카드를 잇달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는 “수십만 청년들을 병영에 가둬놓고 단순 반복 훈련으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게 효율적일까”라며 “징병제와 모병제의 장점을 섞어서 선택적 모병제를 운용하는 게 맞겠다”고 했다. 그는 2022년 대선에서 징집병 규모를 당시 절반 수준인 15만명으로 줄이고, 복무 기간을 10개월로 단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김동연 민주당 후보는 남성 중심 징병제를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여성 모병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후보는 “모병제를 확대해 남녀 전문병사를 대폭 증원함으로써 징병제 부담을 줄이고 군 가산점도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유정복 후보는 “남녀가 국방 의무를 다하는 ‘모두 징병제’ 도입을 추진하겠다. 이는 완전한 모병제로 전환하기 위한 전 단계 조치”라고 밝혔다. 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2030 세대와 그 부모들의 표를 끌어모으겠다는 속내가 담긴 것이다. 대선 때마다 군 복무 기간이 단축돼 이제 18개월까지 줄었다. 선거를 치를수록 국방력이 약화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모병제 전환은 기존 군사·안보 체제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중대 사안이다. 북핵을 머리에 인 우리 안보 상황에서 모병제 도입이 현실에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현재 우리 병력은 약 48만명인데 이 중 29만명이 의무 복무 병사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징집 인원의 절반(15만명)만 모병으로 전환해도 매년 1조2000억원 넘는 예산이 더 들 것으로 추산했다. 그만 한 비용을 국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군 복무에 대한 국민 인식을 고려할 때 보수를 더 준다고 하더라도 실제 지원자가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드론과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병력 부족을 메운다고 하지만 인간 병력은 전쟁에서 승패의 기본 요소다. 첨단 무기를 보유하더라도 결국 이를 운용하는 건 사람이다. 우리의 지상군 병력은 북한군 120만명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핵무기 수십 기를 보유한 김정은은 “대한민국 전 영토를 평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렇게 위중한 안보 상황에서 우리가 느슨한 국방 실험을 할 처지인가. 미국 정치권에서도 한국이 주한미군에 안보를 떠넘긴 채 병사들의 복무 기간을 계속 단축하고 있다고 힐난하지 않나.

모병제는 입시제도와 함께 사회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고학력자와 부잣집 자녀는 군대에 안 가고 저학력자와 가난한 집 자녀만 군대에 가게 돼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가뜩이나 사회 지도층 자녀의 병역 기피가 끊이지 않는 현실이다. 병역 기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입국 금지된 가수 유승준 사례가 우리 국민의 눈높이를 보여 준다. 모병제는 국방력에 미칠 영향과 눈덩이처럼 불어날 인건비에 따른 재정 압박, 인구 추이와 국민 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징병제 환원 바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강제 병합을 계기로 리투아니아(2015년) 노르웨이(2016년) 스웨덴(2018년) 라트비아(2023년)는 모병제를 폐지하고 징병제로 돌아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독일과 영국 등에서도 징병제 부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8년 모병제를 도입한 대만도 중국의 침공 위협이 커지자 지난해부터 사실상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전쟁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병역제도 개편은 인구구조 변화와 미래전 환경을 종합해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도 표를 얻기 위한 구호만 요란할 뿐 정작 진지한 고민이나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은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이 아니라 중장기적 과제로 신중하고 차분하게 검토하는 것이 옳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경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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