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장외전이 뜨겁다. 후보 간 경쟁에 버금갈 만큼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억만장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셀럽’의 지원 사격이 또 다른 흥행 요소가 되고 있다. 누가 누굴 지지하느냐가 팬덤까지 좌우하면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번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단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의 경우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초대형 스타를 비롯해 전통적으로 친민주당 성향이 뚜렷한 할리우드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눈에 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응원하는 연예인의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일론 머스크로 대표되는 억만장자들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선거 캠페인을 위한 화력 지원 면에선 월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녀의 지지 성향이 엇갈린 경우도 나왔다. 레이디 가가는 해리스의 투표 전 마지막 유세에 나선 반면, 그의 아버지이자 기업가인 조 게르마노타는 트럼프의 열성적인 지지자다. 해리스 지지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친민주당 성향인 앤젤리나 졸리의 아버지이자 배우인 존 보이트도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해리스 지지자의 코드는 ‘문화산업’과 ‘여성’으로 귀결된다. 이들은 특히 여성이 스스로 임신·출산·낙태 등을 결정할 권리인 '생식권'을 옹호하면서 트럼프의 열성적인 지지자를 뜻하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을 강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커밍 아웃'은 상징적이었다. 스위프트는 지난 9월 10일 두 후보 간 TV토론 직후 인스타그램에 해리스 지지를 처음으로 공개 선언하면서 반려묘를 안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을 ‘아이 없는 고양이 여성(Childless Cat Lady)’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 상원의원이 아이 없는 여성을 조롱하면서 썼던 표현을 간접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장치였다.
미국 사회는 3억여명으로 추산되는 스위프트의 팬인 ‘스위프티스(Swifties)’ 중 상당수가 젊은 여성 유권자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실제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다. 공교롭게도 스위프트가 해리스 지지 선언을 한 당일 미국 유권자 등록 사이트엔 접속자가 평소의 열 배 이상 몰렸다. 이후 한 달간 그의 팬이 모은 해리스 대선 후원금만 22만 달러(약 3억원)에 이르렀다.
지난달 말 휴스턴 유세에선 팝스타 비욘세가 등장해 해리스 지지를 호소했다. 백인 빈민층 출신의 래퍼 에미넴, ‘흑인 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스티비 원더, 미국 Z세대의 아이콘인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빌리 아일리쉬 등 초호화 가수 군단이 해리스의 손을 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조지 클루니, 앤 핸서웨이 등 유명 배우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도 해리스의 유세 연단에 올랐다.
공화당원인데도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 지지 의사를 밝힌 셀럽도 꽤 있다.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지난달 30일 X(옛 트위터)에 “나는 공화당원이기 전에 항상 미국인일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내가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에게 투표하려는 이유”라고 밝혔다. 2012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인 밋 롬니를 지원하기 위해 연단에도 올랐던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트럼프에 대해선 반대가 확고하다. 2020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 제랄도 리베라도 트럼프를 “패배자”라고 부르며 등을 돌렸다.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는 연예인 중엔 남성 컨트리 음악 가수의 비중이 높다. 공화당원의 애창곡이자 ‘비공식 공화당가’, ‘트럼프 입장곡’ 등으로 불리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를 부른 리 그린우드가 대표적이다.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도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다. 지난달 말 뉴욕에서 열린 트럼프의 유세 무대에 올라 지지 연설 전 상의를 찢는 등 특유의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었다. 멜 깁슨, 데니스 퀘이드와 같은 원로 배우도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닐 암스트롱과 함께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 전직 미식축구 선수 브렛 파브, 미 종합격투기 UFC의 회장인 데이나 화이트 등도 트럼프를 지원하고 있다.
요즘 트럼프의 ‘빅스피커’는 단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트럼프와 공화당 진영에 올해 들어 1억3000만달러(약 1800억원, 지난달 말 기준) 이상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선거에 더 많은 돈을 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머스크는 또 트럼프와 함께 유세 무대에 서고, 주요 경합 주에선 직접 지원 유세를 조직해 열었다. 특히 보수 성향 유권자 등록을 장려하기 위해 매일 상금 100만 달러(약 14억원)을 내건 이벤트를 벌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는 정보기술(IT) 업계와 억만장자들의 지지세가 뚜렷하다. 전통적으로 친민주당 성향이었던 실리콘밸리도 무역 전쟁, 친환경 정책 등을 이유로 공화당으로 돌아선 분위기다. 순다르 피차이(구글), 앤디 재시(아마존), 마크 저커버그(메타), 팀 쿡(애플) 등 빅테크 CEO들이 잇따라 트럼프와 연락하며 밀착 행보를 보였다.
이를 두고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대비해 관계를 맺는 것”(CNN) 등의 풀이가 나왔다. 다만 빅테크 출신 중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해리스 캠프에 거액의 정치 후원금을 내는 등 사실상 해리스를 지지하고 있다.
억만장자들 중 트럼프 지원 대열에 선 사람은 눈에 띄게 많다. ‘헤지펀드의 전설’ 빌 애크먼 퍼싱 스퀘어 캐피털 CEO와 부동산 큰손인 제프리 팔머, 카지노계의 거물인 필 러핀, 멜론은행의 상속자 티모시 멜론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중 일부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입각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표심에 영향? “뚜껑 열어봐야”
유명인의 특정 후보 지지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불분명하지만, 투표 독려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지난해 미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는 관련 보고서에서 "유권자가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상황에선 유명인으로 시선을 집중시켜 투표를 독려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시카 피젤 뉴멕시코대 정치학과 교수는 "처음 투표하는 유권자, 무당층인 경우 유명인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ABC 방송에 말했다.
하지만 실제 효과를 측정하긴 어렵다는 게 여전히 중론이다. 개표 이후 연령별·성별·인종별 투표 행위를 꼼꼼히 분석해봐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