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일상 속 머나먼 노인과 금융의 거리

2024-10-13

“예, 박아영 기자님입니꺼? 오늘자 신문 4면 기사에 대해 좀 물어보려고요.” 신문에 나간 기사와 관련해 기자에게 직접 전화가 온다는 건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다. 사실 부재중 전화가 왔다는 메모를 전달받은 뒤 해당 기사와 관련 자료들을 먼저 출력해뒀다. 몇번 다시 읽어봐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기사에는 ‘여신거래 안심차단’ 서비스가 시행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근 인터넷주소(URL)가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 휴대전화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게 만들고, 개인신용정보를 빼내는 디지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기범들은 이렇게 알아낸 개인정보로 몰래 대출을 받아 돈을 편취한다.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신규 여신거래가 차단돼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실행되는 대출 피해를 막을 수 있는데, 초기에는 본인 대면 가입만 가능하다는 정보가 기사의 요지였다.

“기사를 보니 꼭 필요한 정보 같아서 나도 가입하고 싶은데 혹시나 헛걸음할까 봐….” 수화기 너머로 전화를 건 이유가 밝혀지자 내심 안도감부터 들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경북에 사는 70대 농민 독자였다. 디지털금융사기에 취약한 고령층에게 더욱 유용한 정보였기에 서비스 이용법을 다시금 확인하려 한 것이다. 실제로 해당 서비스는 시행된 지 한달 만에 약 9만명이 가입했으며, 60대 이상 고령층의 가입률이 전체 가입자의 62% 수준으로 가장 높았다.

금융은 고령층의 삶에도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영업점은 대폭 줄었고, 고령층의 일상에서 금융과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이 독자도 먼 곳에 위치한 영업점에 힘들게 갔다가 필요한 서류 등을 놓쳐 재방문하는 일이 생길까 봐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을 테다. 독자는 전화 말미에 “갔는데 혹시나 안되면 어쩌지요? 그때 다시 박 기자님께 전화드려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네. 연락하시면 도와드릴게요.” 무슨 자신감인지 확답을 건넸다.

최근 금융당국은 여신거래 안심차단 서비스와 관련해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을 위해 임의 대리인을 통한 신청도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디지털금융으로의 변화와 혁신도 중요하다. 하지만 변화에 앞서 고령층의 금융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한번 더 고려한다면 다른 방안도 함께 나오지 않을까. 몸이 멀어졌다고 해서 마음마저 멀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박아영 정경부 기자 aa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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