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민주주의
우리나라는 해방 후 수십 년간 독재에 시달리며 아시아 최고 빈국이었던 적이 있다. 독재자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재벌과 결탁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으며 저항하는 자들은 납치와 고문, 실종, 그리고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활황과 노동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국은 중진국으로 들어서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더욱 거세졌다. 독재자들은 더 이상 군홧발로 국민을 짓밟을 수 없었다. 부마항쟁이 그랬고 광주항쟁이 그랬고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그랬듯이, 전국의 학생, 노동자, 시민의 희생과 항쟁 속에서 마침내 독재는 무너졌고 오로지 한국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시간이 흘러 국정 농단의 박근혜 대통령 역시 연인원 수천만 명의 평화적이고 의연한 시위로 최고 권력자에서 쫓겨났다. 당시 세계 선진 민주국가들은 한국의 시위문화와 민주주의의 완성도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촛불혁명의 기반하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고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모두 이룬 나라가 됐다. 아직도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 중인 많은 나라들이 이루고 싶은 귀감의 나라가 되었고 선진 민주국가들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역동을 부러워했다. 한국은 더 이상 무너질 수 없는 확연한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였고 세계 누구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무능한 폭군의 내란 획책
그러나 무능한 폭군이 대통령이 되면서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부터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하면서 예산 낭비와 국정 운영의 물리적 시스템에 장애를 일으켰다. 또한 재임 시절 숱한 사고와 참사에도 어떤 책임 있는 반성이 없었고 심지어 은폐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자신의 친인척과 관련된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특검을 거부했고 명태균 사건에서 보여지듯 정당공천에 관여한 정황도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야당과는 협치를 거부하며 오로지 자신의 충복인 검사를 이용해 정적 제거에만 혈안이다 보니 한국 정치는 얼어붙고 극단적 대결로 치닫게 했다. 초부자는 감세해 재벌 곳간에 현금이 쌓이고 있지만 국민의 호주머니는 비고 경기는 악화일로에 있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이렇게 국정을 혼란 속에 빠뜨려 놓고는 지지율이 최악이 되자 검사를 통한 강압적 정치로 일관하다가 급기야는 총·칼을 동원하는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영화 <서울의 봄>의 장면들이 연상된다. 탐욕에 절은 군 장성들이 군대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그 게걸스러운 모습이 이번 계엄을 주도한 대통령과 주변 핵심 장성들에게 겹쳐 나타난다. 이들은 계엄이 성공하면 국가권력의 최상위에 올라 장기 집권을 꿈꾸고 부귀영화를 꿈꿨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침탈했고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놓은 문명을 파괴하려 했다. 이들은 언론을 통제하고 시민의 입을 막고 야간통금을 하고 학교를 휴학하는 등 시민권 침탈을 시도했다. 외교적으로 최악의 상태를 만들어 쇄국의 길로 몰아넣고 가뜩이나 힘든 경제를 무너뜨리려 했고 심지어 전쟁 유발 위험까지 보였다. 윤석열 개인과 그 장성들은 권력욕과 부귀영화를 위해 한국의 모든 자산을 파괴하는 내란을 획책했다.
시스템 정비해 민주주의 지켜야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강고했다. 폭군의 문명 파괴 획책은 단 6시간 만에 끝났다. 늦은 밤에 국회로 몰려든 시민들, 국회를 봉쇄하라는 명령에도 담을 넘은 여야의 국회의원들, 부당한 명령을 회피한 병사들과 경찰들 그리고 밤새워 고통과 분노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 국민의 거대한 물결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였고 폭군의 문명 파괴를 막은 힘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강고했으며 모두가 일치단결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온 국민의 힘으로 일궈놓은 문명을 한순간에 파괴하려는 폭군을 막아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물결은 윤석열을 탄핵했다.
그러나 탄핵이 가결된 지금에도 윤 대통령은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고 있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국민의 일상을 파괴하고 나라를 파멸로 끌고 가는 정치적 도박을 한 윤석열은 여전히 자신을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 탄핵을 국민적 심판이 아닌 정치적 음모라 주장하며 꺼져가는 힘마저도 국가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폭군의 모습이다.
내란죄를 범한 대통령과 직속 부하들은 법에 따라 가장 강력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문명을 파괴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지만, 이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지켜졌다고 할 수 없다. 저런 폭군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시스템을 다시 정비해야 할 것이다. 무지한 폭군이 호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계엄을 선포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군인과 경찰이 헌법 수호를 위해 명령을 거부하는 제도를 더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황당하고 무식한 폭력이 대통령으로부터 행사되지 못하게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더욱 강고할 때 폭군은 처벌받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문명은 더 발전할 것이다.
안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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