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사전계획 ‘거사’로 드러나
권력 주변 머무르며 연줄로 출세
육사출신 정치군인 횡행 과거 재연
새 국방수장, 정치 군인 배제해야
대다수 군인은 진급에 목숨을 건다. 소위 잘나가는 선배를 따라 줄을 서는 것은 당연하다. 정권 눈 밖에 나면 진급 길이 막히다 보니 정치권도 기웃거린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정도가 심해졌다. 무장(武將)의 기개가 넘치는 군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샐러리맨처럼 됐다는 자조는 일상이 됐다.
정권 눈치나 살피던 군이 12월 3일 비상계엄에 가담했다. 그것도 친위 쿠데타 냄새가 물씬 나는…. 마지막으로 계엄이 선포된 것이 1980년 5월 17일이고 보면 이후 40년 이상 목도하지 못한 장면이다. 과거 걸핏하면 군이 계엄 발동 주체로 나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흑역사가 적잖았다. 그러나 1981년 국회법 개정으로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제동장치가 마련된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민주화에 따른 국민의 눈높이도 작용했을 게다. 이를 무시한 비상계엄이 발생했으니 국민이 경악하지 않았겠나.
대통령의 아집과 편향된 사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군인들의 맹목적 수용과 복종은 어디에 근거했을까. 정치에 순치된 극심한 눈치 보기로 귀결된다.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폐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군은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누구 하나라도 항명해 반발했다면 희망의 끈이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끝내 국민 신뢰를 잃고 동네북 신세가 됐다. 자업자득이다. 계엄 이후는 더 가관이었다. 의연함 대신 당황해하며 일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동원된 처지가 이해는 가나 그들의 행동은 비굴하고 옹색했다. 군의 미래가 암담하다.
그런데 12·3 비상계엄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한 ‘거사’였음이 수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7일 경찰 특별수사단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지난 1일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을 만나 사전에 계엄을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간인 신분인 예비역이 계엄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한 야당 의원은 “노 전 사령관이 계엄포고령을 작성하는 등 이번 내란 행위의 핵심 기획자 중 한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문 정보사령관 등으로 이어지는 계엄 커넥션의 비선 실세라고도 했다. 이들이 이전 보수정권에서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은 알 만한 군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청와대와 경호처, 국가정보원 등 권력 주변에 머무르며 실력보다는 연줄로 출세했다는 얘길 듣는다. 정치군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권력에 기생하면서 모두 국가를 위하는 일로 포장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지시에 대한 일말의 거부감조차 없었다. 비상계엄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실행된 연유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육사 선후배 관계다. 육사 출신 정치군인들이 횡행하던 시대의 재림처럼 보일 정도다. 육사가 다시 폐족이 될 처지에 놓였다는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최근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는 2025학년도(85기) 육사 생도 선발 관련 공지사항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늘 이맘때면 반복되던 학사 일정인데 비상계엄 사태로 국민의 눈길이 여느 때보다 차갑다. “이번 일로 얼마나 많은 합격자가 지원을 포기할지 걱정”이라는 하소연이 육사 주변을 맴돈다. 군이 아래로부터 무너지는 형국이다. 어디 육사만의 문제이겠는가. 사정이 이런데도 예비역들은 다들 꿀 먹은 벙어리다. 국방부 장관을 지낸 한 예비역 대장은 “위헌적 계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도 항명하지 못한 것을 탓할 수도,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군인 본분을 외면하기도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용기가 없기는 현역과 매한가지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운 국가의 공통된 특징은 현명하지 못한 군주의 독선과 관료의 부패, 그리고 의욕을 잃은 민중의 지친 삶이 동시에 교차한다. 외침에 대한 군의 저항력 또한 지리멸렬이다. 지금 우리의 처지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자성과 회오(悔悟)가 없다면 군을 바로 세우기 어렵다. 하루빨리 만신창이 군을 추슬러야 할 때다. 공백인 국방 수장에 정치군인을 배제하는 작업은 그 첫 번째 과제일 수 있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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