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치마폭에 시를 쓰다…경성 셀럽들의 ‘명월관 낭만’

2025-05-06

이난향의 ‘명월관’

이난향의 ‘명월관’ 디지털 에디션

‘남기고 싶은 이야기-명월관’의 디지털 에디션을 연재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기생으로 손꼽혔던 이난향(1901~79)이 1970년 12월 25일부터 이듬해 1월 21일까지 중앙일보에 남긴 글입니다. 기생이 직접 남긴 기생의 역사이자 저잣거리의 풍속사, 독립투사부터 친일파까지 명월관을 드나들던 유력 인사들이 뒤얽힌 구한말 격동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오류나 후에 확인된 팩트(본문에서 녹색으로 표시),여러 등장인물 및 사건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 더욱 풍부한 스토리로 다듬었습니다.

제19화. 명월관을 드나든 문인·언론인

세상이 온통 흐려지고 명월관이 난장판이 되었지만 뒤늦게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언론인과 문인들의 존재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학문을 닦고 시대의 첨단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지자 명월관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기생들은 이들의 재치 있는 이야기에 솔깃해졌다.

대충 1930년대 전후라고 할까. 하루는 양복장이 신사들이 그득한 연석에 모르는 사람이 한 분 나타났다. 옥양목 두루마기에 도리우찌 모자를 썼고, 신발은 자동차 타이어 속으로 만든 경제화를 신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좌석의 손님들과는 어울릴 옷차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손님은 방을 잘못 들어온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좌중에 계신 손님들이 모두 일어나 정중하게 대접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분이 바로 육당 최남선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육당 선생께서는 별로 말씀이 없었으나 백운선의 영변가를 좋아하셨고, 음성은 쇳소리였다. 내가 육당 선생의 처음 본 인상을 ‘복덕방 목침’ 같다고 손님들에게 말했더니 그 후 이 말은 육당 선생님의 별명처럼 돼버렸다.

춘원 이광수 선생은 얼굴색이 유난히 빨간 것이 인상에 남아 있으며, 수주 변영로 선생은 그때부터 술을 많이 들었는데 김금련의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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