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바꿀 주 4.5일제, 금융이 먼저 길을 열겠습니다’.
지난 8일 오전 10시. 서울 다동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상황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뒤편에 걸린 현수막 문구다. 은행권을 대표하는 금융노조는 ‘주 4.5일제’ 도입을 내걸어 2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만약 파업할 경우 2022년 이후 3년 만이다. 노조는 이날 간담회에서 “고액 연봉자의 배부른 투쟁이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주 4.5일제 도입이 산업계 화두로 떠올랐다. 2004년 주 5일제를 처음 도입한 지 21년 만에 관련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의 국회 통과에 이어 정부의 하반기 노동 분야 중점 추진 과제로 꼽히면서다. 주 4.5일제는 친(親)노동을 앞세운 이재명 정부의 공약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예산으로 시동을 걸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1일 주 4.5일제 도입 지원에 내년도 예산 325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정부가 직원 1명당 월 20만~25만원을 지원한다. 주 4.5일제를 시행하며 직원을 추가로 뽑을 경우, 신규 채용 인력 1명당 60만~80만원씩 장려금을 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노란봉투법 통과를 주도한 여당은 주 4.5일제도 입법으로 지원한다. 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1주당 근로시간 40시간, 1일 근로시간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한 기존 근로기준법을 바꿔 1주당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더 줄이는 내용이다.
노동계도 여당에 힘을 보탰다. 민주노총은 지난 3일 국회가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1999년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탈퇴한 지 26년 만의 복귀다. 사회적 대화는 국회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과 함께 노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국회가 주도하다 보니 주 4.5일제 등 논의 내용이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노조는 당장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주 4.5일제를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지난 3~5일 2018년 이후 7년 만에 파업을 벌인 현대차 노조는 임금 삭감 없이 금요일 근무를 4시간 줄이는 내용의 주 4.5일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주 4.5일제 논의가 분출하는 건 일정 부분 공감대가 있어서다. 2022년 기준 국내 임금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904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19시간에 비해 185시간 많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근로시간이 긴 곳은 콜롬비아·멕시코·코스타리카·칠레·이스라엘 등 5개국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주 4.5일제 시행에 대해 “결국 가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노동 시간 단축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하지만 소수 대기업을 제외하면 주 4.5일제는 ‘그림의 떡’이다. 경영계는 대체인력 확보의 어려움, 임금 보전을 둘러싼 갈등, 업무 몰입도 저하 등을 이유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 4.5일제를 도입할 경우) 대기업은 해외 생산 확대 등 대응할 수단이라도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연장 근로수당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경제가,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을 감당할 체력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법정 근로시간이 아닌 실제 근로시간부터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